우야둥둥 버텨 봐야겠다
4평이 조금 안 되는 땅이지만 '텃밭'이라는 경쾌한 리듬감에 마음이 벌써부터 들썩인다.
'올해는 감자를 심어볼까' 하는 조급한 생각에 이리저리 뒤척뒤척 잠도 잘자지 못했다.
한 해가 가고 또 가지만 무언가를 키워낸다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다.
땅을 깊숙이 뒤엎고 거름을 섞느라 뒤집고 또 뒤집고를 반복한다. 물을 충분히 준 다음 준비한 쌈채소 모종을 심어 두고, 사이사이 씨앗을 뿌려둔다. 가장자리를 따라 토마토, 오이, 고추, 부추를 두어 포기 심어둔다. 한 식구가 먹기에는 충분하기에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이주일 정도 지나면 모종으로 심은 것들은 제법 키가 커서 '똑 똑' 소리를 내며 잎을 따내고, 씨를 직접 뿌린 것들은 '파릇파릇'한 새싹을 내민다.
가만가만 생각해보니 주말농장 6년 차에 들어선다. 해마다 모종을 심고 씨를 뿌리다 보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하나하나 알아 갈수록 궁금한 것은 더 늘어가고 기대하는 것도 변해간다.
모종을 심을 때면 직접 고르는 재미가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커있기 때문에 더 잘 자랄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줄을 지어 심어둔다. 물론 계획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비워진 공간은 쉽게 다른 모종으로 대체 가능하다. 짧은 시간 안에 제값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씨앗은 그 결과가 아리송 해서 관심 있게 바라보게 된다. 너무 깊이 심으면 싹이 나오는 시간이 더디게 되고 너무 얕게 심으면 물에 떠내려가거나 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꺼번에 싹을 돋아 피워내면 그 푸릇푸릇한 모습이 절로 웃음을 준다.
모종에서 끊어온 잎채소들을 한참 즐기고 있을 때쯤엔, 씨를 뿌려 키운 싹들에서 다음 수확을 기대하게 된다.
줄지어 뿌려둔 씨앗들이 싹을 내밀고 있고, 주위에 모종들과 잡초가 한데 자라고 있다. 빽빽하게 자란 싹들을 속아주면서 잡초를 함께 뽑아낸다.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이런저런 중얼거림을 하고 있다.
모종은 경력직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자라 있는 상태로 값을 주고 사 왔기에 단시간에 실적을 보여야 한다. 미리 정해둔 위치에 계획하고 심어두기에 관리가 용이하며 상대적으로 크지 못하는 것은 눈에 쉽게 드러난다. 비료가 너무 많았거나 뿌리내린 곳에 적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쉽지만 다른 모종을 가져와 자리를 채우거나 비워둔다.
씨앗은 신입사원이라고 할까. 같은 시간에 뿌려둔 씨앗은 같은 시기에 싹을 내민다. 몇 주간의 시간을 두고 성장시킨 후에 원하는 간격과 위치를 두고 속아내기를 한다. 속아내는 기준은 '내가 정해둔 위치에 보기 좋게'이다. 조금 더 자라고 덜 자라고는 크게 상관없다. 지금의 작은 차이는 속아낸 다음 넓어진 간격에 따라 얼마든지 성장시킬 수 있다. 잠깐의 아쉬움 때문에 제 때 속아내지 않으면 모두 자라지 못한다.
너무 현실적인 걸까.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모종은 빨리 심어서 빨리 먹기 위한 것이니 그 역할은 '지금'을 움직이는 힘이 되고, 씨앗은 '내일'을 풍족하게 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인지, 보기 좋은 위치에 줄을 서고 있는 것인지, 그 목적에 부합하고 있는지 살짝 걱정이 된다.
잡초의 기준은 모호하다. '내가 정해둔 위치에 보기 좋게' 자란 것이 아니면 잡초와 다르지 않다. 계획에 없던 씨앗이 날려 자라난 것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잡초가 되어버린다.
너무 현실적 아니면 비관적(?)인 걸까..
지금 처해있는 나의 모습이 '모종' 이거나 '씨앗' 이거나, 아니면 '잡초'라면…
"난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하는 물음에 답을 찾으려고, 4평 남짓의 텃밭을 바라본다.
나무 같은 사람이 있고, 꽃 같은 사람이 있고, 담쟁이넝쿨 같은 사람도 있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 뿌리내리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그려본다.
모종이라고 해도, 씨앗이라고 해도, 그도 아니면 잡초라고 해도 나무 같은 사람을 꿈꾸며 오늘도 우야둥둥~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