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들고 또 깨는 순간들
似而非(사이비). 같으면서도 아닌 것.
한때, 그러니까 한참 휴거열풍이 불던때와 일본에서 옴진리교가 뜰 때, "교주"라는 직업에 마음이 끌렸다.
어쨋든 한 세상, 멋지게 살다가는 그 한 때를 가져본, 많지 않은 이들 중 그 한명이 되어 보고 싶었다. 물론 그런 사람이 되기에는 저질러보는 용기와 만행 수준의 자기애가 부족했다.
이 책, 저 책을 뒤져
누가 누굴 낳았다기도 하고, 접시를 타고 왔다고도 하고, 모든 것은 인연의 사슬에 엮여 있다고도 하고...
이해하기 힘든, 머리에 피가 모이지 않는, 수 많은 말들이 있었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함때문이었던지, 삐딱하게 돌아간 시선은 난독증을 더 심하게 만들 뿐이었다.
선과 악이 정의 될 수 있습니까?
무엇이 선 입니까?
무엇이 악 입니까?
우리가 해야할 것은
우리가 있는 이 순간, 이 공간에 무엇을 옳다고 하고 그르다고 할지를 끊임없이 재정의 해야 하는 것 입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인지...
거듭되었던 자문자답이 자승자박으로 변해가는 지경이다.
잠이든 사이(가물가물한 2000년쯤)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내 목을 칭칭 감아 돌고 있었다.
차갑지만 부드러운 감촉.
내 눈앞에 있는 그댄
긴 혀를 내밀며
독오른 이빨을 드러낸다.
무슨 말이든 해 보렴
아님 날 배어 물든지
이브를 흥분시킨 내 손으로
이브를 데려다준 내 두발로
선악과를 배어 물 듯이
날 배어 물어주렴
내 아들아
내 너를 만져줄 두 손이 없구나
내게 다가갈 두 발이 없구나
흉한 몸뚱이로 네게 기어갈 수밖에
흉한 몸뚱이로 네 몸 쓸어줄 수밖에
내 너를 위해
사지가 잘린 아픔을 겪었다
너를 사랑하기에
신을 거부했다
넌 노예였단다
생각 할 줄 모르는
기쁨을 모르는
거세당한 짐승이었다
자고 일어나 뻘밭을 뒹굴며
흙을 씹고 모래를 삼키지
부서져 내리는 너의 육체
너를 창조한 신의 이름으로
창조했기에 소멸시킬 권리가 있을까?
따먹으렴, 이브야
어서
내 너를 위해 두 팔을 잘리겠다
따먹으렴, 이브야
어서
내 너를 위해 두발을 잘리겠다
어여쁜 이브야
넌 나를 잊어버리겠지
넌 나를 미워하겠지
넌 나를 돌로 쳐 내리겠지
이제 난 네 발 밑을 기어다녀야 한다
어여쁜 이브야
이 모든걸 잊어버리겠지
내 아들아
신은 체온이 없단다
너무도 차갑지
내가 날 좀 안아 줄 순 없겠니?
없겠지.
기억속에 지워진 니 아비의 이름을
넌 그저 악(惡)이라 부를 뿐이니
내 아들아
너의 두려움에 찬 눈이
무엇을 보느냐
이 사지 잘린 몸뚱이냐
독 오른 이빨이냐
하지만
내겐 자랑이란다
너를 너이게 해준 댓가로
받은 신의 시린 선물이지
이젠 눈을 감으렴
네 눈을 보기가 두렵구나
부디 떠나는 날 보지 말아다오
초라한 육신을 보지 말아다오
다만
기억해 줄 순 없겠니?
없겠지.
턱선이 더위보다는 추위에 민감하게 적응했듯이 온 몸이 둥글둥글한 형태로 진화 혹은 퇴화한 지금.
여전히 모르겠다.
눈부신 세상의 아침에 더 잘보기 위해 짙은 선글라스를 썼는데, 보기 싫은 것들 때문에 깊은 밤인듯 모른척 하기위해 벗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사이비는 나일지도 모르겠다.
똑바로 바라 보지 않고, 아닌 것을 의심하며 바라보는 모습.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태양을 등지고 걸으면, 그림자를 따라 가게 된다.
태양을 마주보며 걸을때, 그 눈부신 태양을 마주하며 걸을 때, 그림자가 아닌 내 발걸음이 먼저 땅을 디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