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럴게요
죄송합니다.
처음 시작은 술이 아니었습니다.
그날도 저녁 7시가 넘어 고객사로부터 호출을 당했습니다.
속으로 삼키는 욕들이 그날따라 자꾸만 밖으로 세어 나왔습니다.
결과는 조금 허무했습니다. 해결됐다며 그냥 가라는 말을 듣고 "감사합니다"를 잊지 않고 웃으며 뒷걸음으로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정신줄이 한올 풀어진 것 같습니다.
변명부터 시작하게 되는 구차함.
한잔을 마시더라도, 아니 백 잔을 마시더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하는데...
尹而性有約不來獨飮數器戱作俳諧句 / 權韠
(윤이성유약불래독음수기희작배해구/ 권필)
逢人覓酒酒難致(봉인멱주주난치)
對酒懷人人不來 (대주회인인불래)
百年身事每如此 (백년신사매여차)
大笑獨傾三四杯 (대소독경삼사배)
윤이성과 약속하였으나 오지 않아 혼자 여러 잔 마시며 우수개 글을 짓는다/권필
사람을 만나 술을 찾을 때는, 술 찾기 어렵고
술을 대하고 있을 땐 마음에 품은 사람, 그 사람이 오지 않네
백 년 평생 이 내 몸은 매양 이와 같으니
크게 웃으며 홀로 서너 잔을 기울 인다네
약속을 하고서 나타나지 않는 친구에게
"나 혼자서도 잘 먹고 있으니 걱정 마시게"
하며, 시를 지어 보낸다.
"혼자서 먹는다고"
"그것도 혼자서 웃으면서"
지금이라면 SNS에 사진과 함께 실시간으로 전송되었겠지만, 그때는 또 그때의 재미가 있다. 글을 통해 압축된 상황과 시간차가 끝없는 상상을 이어준다.
속상한 마음에 복귀한 사무실. 늘 술 고픈 나와 비슷한 옆 칸 동료들과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었습니다. 다만 불행히도 술이 쭉쭉 들어갔습니다. 먹지 않아도 씹을 것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알아서들 자가소비하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그리고 한순간 장면이 바뀌고 눈에 다시 초점이 잡히더니....
사무실 책상이었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회의 시간 내내 심각한 표정으로 있었습니다.
어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집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반성문 쓸게요.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