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소멸시대? 하지만 여전히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있다
우리는 도대체 왜 배우는가?
많은 답들을 떠올릴 수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더 많은 돈을 벌려고, 결혼 잘하려고, 승진을 위해... 등 현실적이면서도 외재적인 가치에 가까운 이유로 배운다는 답.
한편으로는 만족, 행복, 존재의 이유 등 배우는 과정에서 얻는 내재적 가치에 가까운 답변도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우리는 왜 가르치는가?
굳이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위와 같은 질문을 "왜 배우는가?"에 대한 반대로 해 볼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배우는 목적과 결을 같이 할 수 있다.
'더 좋은 학교로 진학시키기 위해', '삶에 유용성을 가지는 기술이나 기능을 전수하여 실제 직업교육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와 같은 외재적 동기에 의한 답. 또 한편으로는 '가르치는' 그 자체에 담긴 '숭고한 정신'(교육의 정신)이나 '학문의 가치'에 대해 알게 해 주려고. 와 같은 내재적 동기에 의한 답으로 말이다.
즉, '기술이나 기능을 전수해 주려고' , '어떤 의도로 상정한 목표에 도달시키기 위해' 같은 '훈련'과 같은 성격의 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교육을 통해 '바람직한 인간으로의 덕성을 키우기 위해', '보다 세상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와 같은 '성장'으로서의 성격으로 답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훈련'의 개념은 '하는 지식', '성장'의 개념은 '보는 지식'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두 가지의 목적에 대한 대답을 감히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볼까?
우리는 왜 공부(교육)하는가?
잘 살려고...
어떤가? 공감하지 않는가?
물론 '잘 산다'는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행복'이란 결코 남이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런 '목적의식' 없이 그냥 주어진 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살아가는 것인가? 살아지는 것인가?)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이유와 동기가 있다. 우리 일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
그 소중한 시기에 사회는 '공부'라는 '공동의 의무'를 부과해 두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는 도대체 '왜 공부하는데?'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 정해진 답을 내릴 수는 없는 질문이라 지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질문을 던져 사고 하는 것이 결국 우리를 규정하는 것 아닐까?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은 본능의 퇴화지만 대신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자유를 얻는다.'고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분야를 다룰수록 모호함은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이치다. 라는 주장에 공감하지만 수천년이 지나도록 인류의 머릿 속에 무슨 생각이 오갔길래 '교육'이라는 모습은 딱 지금 이 모습이 되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분명히 '교육적인 이유'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저출산 시기'에 더 그 가치에 대해 고찰이 필요한 지금인 듯하다.
미리 밝혀 두면 필자는 'IB(국제인증교육과정) PYP' 인증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다.
두 곳의 IB PYP 프로그램 운영학교를 경험했고 여전히 지도하고 있으며 초등교육 현장에 몸 담고 있기에 할 이야기 '거리'가 조금 있어 감히 글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단순히, IB프로그램의 우수성 또는 막연히 지금 교육의 난점(難點)을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 진도를 지금도 꾸역꾸역 나가며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생님들 그리고 그 교사의 상태(신체적, 심리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