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보고 싶다...
영화를 보고 이런 장면을 상상해 봤습니다.
1. 나는 지금 가야할 곳이 있다. 걸어서 1시간 거리다. 밖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 우산은 없다. 어쨌든 가야되니까 그냥 비 맞으면서 간다. 1시간을 걸어서 간다. 몇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많은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그냥 빗속으로 들어갔고 온 몸으로 비를 맞는다. 목적지에 도착한다. 난 지쳐서 정작 그 곳에서 해야 할 일을 못한다.
2. 밖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다. 일단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린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빗줄기가 아까보다 좀 잦아들었다. 이 때 나간다. 시간은 좀 많이 흘렀다.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비에 맞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행히, 내 생각보다는 아주 늦지 않았다.
한 3년 전만해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저는 1번을 택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요령이 없었습니다 ㅠㅠㅠㅠㅠ하지만 이제는 2번을 택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 라이온킹의 명대사, 아니 영화 역사의 명대사 중 하나로 꼽히는 '하쿠나 마타타'의 진정한 의미를 느꼈습니다.
우리의 귀염둥이 심바가 망할 삼촌 때문에 우다다다다 뛰어서 티몬과 품바가 있는 평화로운 초원에 도착합니다. 아빠가 나 때문에 돌아가셨어(사실은 아니지만), 난 왕의 자격이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요. 무파사가 죽은 프라이드 랜드는 보나마나 엉망이겠지요.
여기서 티몬과 품바는 그 유명한 '하쿠나마타타'를 부릅니다. 근심걱정 잊으라며.
하지만 아주 네 임무를 잊고 살라는게 아니라, 일단은 심바 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단은 우리 근심잊고 지금 이 초원과 평화를 즐기자. 여기는 서로를 해치지 않아,가 하쿠나마타타의 진정한 의미 같습니다. 이건 엄연히 '아예 신경을 끄는 것'과는 다릅니다. 잠시 장대비를 피해있는 것 뿐.
티몬과 품바와 곤충을 먹으며(ㅠㅠ) 건강해진 것 처럼 보이는 심바는 사실 고향을 여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처가 완전히 아문것도 아닙니다. 그 때 여친이 옵니다. 옛날에 결혼을 약속한 암사자입니다…….ㅋㅋㅋㅋ….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여친은 여친이지만 '인생의 동반자' '인생의 동료'라는 데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좋았습니다. 만약에 심바 여친이 '보호해야 할 대상인 연약한 암사자…ㅎ' 이렇게 나왔으면 나 이거 안썼다
암튼 여친은 당장 지금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와서 왕의 임무를 빨리 수행하라고 합니다. 집이 엉망이라이거야 지금!!!!!!!!너 왕 아냐??
심바는 아픈 상처는 잊고 그냥 초원에서 지금처럼 곤충이나 뜯어먹고 살려고 했는데 자연 속에서 아빠를 만납니다. 아빠는 구름처럼, 하늘처럼, 태양처럼 늘 그렇게 곁에서 심바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심바는 '그래 이제 상처는 어느정도 아물었어. 가자, 내 자리로, 원래 내 모습으로' 라고 결심합니다.
만약 심바가 초원 속에서 하쿠나마타타를 누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 때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면 용맹스러운 왕이 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상처가 가득한 장소에서 눈 뜨고 눈 감을 때까지 생활하면서 늘 그 죄책감에 짓눌려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초원 속에서 하쿠나마타타에 안주만 하려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말그대로 곤충 먹는 사자가 되는거죠 뭐... 심바에게 부여된 인생의 엄청난 임무는 애써 무시한채.
인생은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들면 잠깐 쉬어가는 지혜도 필요하고, 또 그 쉼에 너무 안주하지 않는 성실함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감동적인 장면은 바람결에 함께 날아온 심바의 털을 발견한 주술사 원숭이가 심바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기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신은 우리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고 주어진 삶을 성실히 해낼 때 기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심바의 아빠 무파사가 심바를 지켜봤던 것 처럼요.
라이온킹 같은 영화를 만나면 인생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릴 때 봤던 라이온킹은 그저 감동적이었는데, 어른이 되어 본 라이온킹은 느낌이 너무 색달랐습니다. 하쿠나마타타의 진정한 의미, 나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됐습니다.
영화를 보고 후기를 보니 '애니메이션이 낫다' '실사로 보니까 무섭다' 이런 얘기 많던데요, 보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광활한 자연만큼은 정말 멋지게 표현됐던데요. 아 좋다. 라이온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