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후기-누굴 바보로..

생충생충

by 안기자

<이 글에는 스포일러 비슷한 게 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당연히 학과 공부는 둘째였고 입사 시험 공부가 먼저였는데 그 중에서도 토익이 제일 골칫거리였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최소 700점을 요구했고 언론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어쨌든 700점은 최소 기준이었지만, 900점 이상이면 내부적으로 만점을 주고 최소 800점은 넘어야 서류 통과를 시켜준다는 '루머'가 지원자들 사이에서 뭉게뭉게 떠돌았습니다. 내가 진짜 토익 900넘으려고 얼마를 퍼부은건지 갑자기 화가나네^^


암튼 토익 공부는 참 고된 일이었지만 그나마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건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 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나는 무조건 누가 봐도 좋은 곳에 들어가고 싶어. 은행이든 대기업이든. 나는 내 친구가 나보다 돈 더 많이 버는 직장에 들어가면 걔랑은 못만날 것 같아."


'나는 기...기자하려고' (;;;;;;;;). 이 친구가 나중에 어디에 입사했는지 분명히 듣긴 했는데 까먹었습니다. 뭐 어쨌든 저보다 많이 버는 곳에 입사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긴 하네요; 연락은 그냥 자연스럽게 끊겼고요.



우리 사회에 계급이 있다는 걸 저는 대학생 때 까지는 믿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 같습니다. 아니야아니야!!!!혼자 부정하면서요. 그건 저희 부모님이 주입하신 DNA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저에게 '잔머리 DNA'가 아닌 '성실의 DNA'를 심어주셨고, 저는 성실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고 배웠습니다 ㅠㅠㅠ그냥 잔머리 쓰는 법 알려주지 ㅠㅠㅠㅠㅠㅠㅠ 특히 아빠는 여느 아버지들처럼 거실에서 신문을 보는 모습이 저한테는 익숙한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신문은 뭐가 적혀있었는지 늘 저에게 '세상에 남녀 차별이란 없어'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어' 같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취지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차라리 이 사회에 계급은 참 많고, 정교하고, 분명하고, 넘기 힘들다는 것을 알려주셨다면 마음이라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계급의 차이를 인정하면 내가 어디까지 노력하면 되는지 가늠할 수 있고, 실패했을 때에 덜 아플 수 있으니까요.


영화 <기생충> 中


영화 <기생충>은 사실 왠지 보기 꺼려졌습니다. '이거 안보면 바보다!!!!!!!!!!!' '이거 꼭 봐라!!!!!!!!!!!' 라고 몸부림치는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기운 같은 거 있잖아요. 그래서 안보려고 했는데, 걍 봤습니다. 그리고 후회했습니다. 이렇게 폭력과 피가 난무하는 영화인 줄 알았다면 절대 안봤을텐데...그리고 마지막 부분, 노숙인들의 묻지마 살인을 조명하는 뉴스 장면이 나오는 줄 알았다면 더더욱 안봤을텐데...


누구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반지하 가족인 송강호네겠지요. 그들 사는 게 어떻던가요. 잠시라도 편하게 있으면 숨 쉬는 것 조차 여의치 않습니다. 피자 박스라도 접어야 하고, PC방 가서 문서 위조라도 해야되고, 하객 알바를 하던지 암튼 뭐라도 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려면 대학을 나와야 하는데 대학은 공짜로 가나요. 밥먹는데 머리 위로 보이는 지상에서 왠 취객이 노상방뇨 하는 것을 보는 것도 하루이틀. 이게 사람 사는 건지...


반지하가 있으면 지하가 있고, 그들은 누군가에게 보이면 안되는 존재다. 라고 영화는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고, 영화는 '아무도 조명하지 않는 지하세계, 내가 조명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정확히 이해했나요?


그런데 인간미 측면에서 보면요.


반지하 사람들이 지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같은 게 있을까요? 반지하 사람들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여유가 좀 더 있는게 맞나요?


이들이 왜 그런 여유조차 없는지 주목하는 게 더 인간애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하세계에 빛이 들려면, 바로 위 세계(조여정네 당연히 아님)부터 아주 약간이라도 더 살만 해져야 합니다. 물도 충분히 흡수하고 영양분도 충분히 흡수해야 아래까지 전달되는데, 그 중간~중간아래 층에 대한 이해나 양해는 너무나 부족한 상태에서, 지하세계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포크레인으로 흙 뒤집듯이 드러내버리니 안그래도 고달픈 삶에 스트레스가 더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지친 사람들에게 부채의식마저 심어주는 이 불편한 기분...


으아....알라딘이나 볼 걸. 조만간 알라딘으로 정화를 하던가, 축구를 보러 가던가, 야구를 보러 가던가(갑자기?)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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