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gal May 01. 2021

집 보러 오는 사람들 구경기

관찰기라고 하기엔 너무 소소해서

나는 세입자로 사는 동안 계속 집주인 복이 있었다. 지금 집주인은 쿨하기가 탑급인데, 독일 사람들이 거긴 독일이 아니라고 부르는 그 동네 분이고 나랑 그 흔한 영상통화도 없이 나에게 집을 세 주기로 결정했고 지금까지 날 만나러 온 적이 없다. 내가 다른 동네에 가고 싶어 이사가겠다고 하자, 별도의 코멘트나 불쾌한 내색 전혀 없이 잘 알겠다면서 곧장 집 광고를 올렸고 나더러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줄 수 있겠냐고, 그 사람들에게 내 이메일 주소를 넘겨도 되겠냐고 물었다. 여러모로 좋아하는 분위기의 동네였고, 구분이 없는 스튜디오 형식의 플랫이었지만 뷰나 전체적인 구성들이 제법 맘에 들었던 집이었어서 떠나는 마음이 살짝 아쉽기도 하다. 조금 살았고 막 절친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안전하고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나이대의 이웃들도 좋았고. 


그렇게 집주인으로부터 집 보여주기 미션을 받은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일을 즐겁게 해내고 있는 듯 하다. 새로운 사람들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그랬는지 방문 전 연락하는 태도, 방문해서 묻는 질문들이나 점검하는 사항들, 그리고 가볍게 하는 스몰톡 등을 나름 즐기고 있다. 그리고 나서 집을 구하던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우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좋다. 메일을 보내놓고 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정확하게 언제 올 건지 말을 안하고선 뜬금없이 자기 시간에 맞추어 연락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이게 내 집이면 아쉬운 입장이니 맞춰보려 하겠지만 나도 세입자인데 언제든 전화통과 메일창을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 편견을 강화하긴 싫지만, 누가 봐도 독일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5분 늦는 걸로도 전화를 줘서 미리 양해를 구한다. 


몰랐는데 같은 동네에서 이사하는 사람들은 주소를 받고 나면 미리 주변을 둘러보며 동네 탐색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메일로 궁금한 점을 미리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 직접 방문해 내 대답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경우다. 그래서 방문시간이 짧다. 직접 방문해서 묻는 질문들은 비슷하다. 이웃들은 어때? 꼭대기 층인데 여름과 겨울엔 어때? 뜨거운 물은 잘 나와? 집주인은 어때? 가구 혹시 뭐 놓고 갈 거 있어? 나도 비슷한 질문들을 물었던 것 같다. 


진짜 이사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아마도 다음 세입자가 될 사람은 지금 가지고 있는 가구가 들어올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천장 높이를 쟀고,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 샤워가 키에 잘 맞는지 들어가 확인을 해보고 (190cm), 진짜 뜨거운 물이 나오는지 테스트를 해보았다. 나도 다음 번에 집을 구할 상황이 되면 꼼꼼히 알아봐야지. 하수구는 어디있고 콘센트는 어디있는지도 제대로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지금 이사갈 곳 사진도 제대로 안 찍어두어 중개인에게 연락해서 그 분이 찍어놓은 사진을 받았다. 나한테 이사가는 이유를 묻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이 경우가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떠나는 이유가 집의 어느 부분이라고 한다면 미리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집에 다녀간 사람 중 적극적이었던 둘은 다 집주인이 자기 가족이 들어와야 한다며 세입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고 한다. 나도 자세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쫓아내는 건 문제가 되지만 집주인 본인이나 가족이 들어와 사는 경우는 괜찮다나 뭐라나. 그러다 보니 이들은 집을 안 찾을 수 없는 상황. 렌트 가격을 물어보니 다들 옛날에 싸인한 좋은 조건에서 인상 없이 살다 온 경우라, 금액이 영 요즘 시세로는 말이 안 됐다. 


워낙 지금 사는 지역 자체가 평화롭고 학생+직장인들이 많은 동네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불쾌하거나 무례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이미 집주인이 스크리닝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다들 마스크를 조심스레 끼고선 찾아와서 조심스레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걸 보니 다큰 어른들이래도 뭔가 귀여웠다.


내가 떠나간 자리를 새로 올 사람이 어떻게 채워넣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던 이 집의 부분들을 새로 올 사람도 즐겼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새로 올 사람과 나의 스케쥴이 딱 들어맞는 바람에 한 달 동안 두 곳의 렌트를 낼 뻔 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어 이미 매우 기쁘다.


지금 집에는 내가 이사갈 동네에서 이 곳으로 이사온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는 그전 동네가 너무 크고 복잡하고 사람들이 차가워 별로였다며 지금 이 동네가 자기 취향에 더 맞는다고 말해주었다. 진짜 지금 사는 곳은 "everybody knows my name"은 아니지만 돌아다니면 아는 사람이 안녕?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가게에 가면 내가 잘 못하는 특정 발음을 기똥차게 알아듣는 점원도 있고 반갑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은행 점원도 있었다. 이제 이사가면 그게 없겠네 싶지만, 내 삶의 더 많은 부분은 넘쳐나는 인구와 그에 따른 익명성에 익숙했으니, 도시인답게 작은 동네를 그리워하지는 말아야지. 


https://youtu.be/Ly0D6x62rdg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 해보는 일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