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격주정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gal Jun 21. 2021

2021년 22-23번째 주

정신없음 주의

또 늦었다. 이번 지각에는 아주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 


일주일 전 새로 이사온 집에 유지보수 문제가 많아지자 집주인이 플랫을 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에게 나갈 생각이 있는지, 보다 명확히는 부대비용을 해결해줄 용의가 있으니 나가는 걸 고려해보겠느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긴 이야기를 짧게 해보자면 일주일 후 집주인은 말을 바꿨고 부대비용은 위로금 형식으로 약간의 이사비용을 보태주는 정도,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고 떠나는 것에 대한 차지를 안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이미 주문한 부엌은 절대 제 값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나는 자타공인 easygoing한 사람이어서, 오래된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어쩔 수 없지 하며 대응해왔다. 물론 나는 이 집을 계약하기 이전 약 15분의 뷰잉이 전부였고 바닥, 벽, 창문 같은 건 확인도 안했고, 발코니 좋다! 만 확인하고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를 한 이후에도 완벽하지 않지만 사이즈와 지역 대비 저렴한 렌트에 만족했고, 어느 정도의 낡은 시설에 대해서는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낮은 렌트는 계약 당시 부동산업자에 따르면 렌트 기간이 5년으로 제한되어 있어서였지,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불편을 감수하는 댓가는 아니었다. 부자는 아니지만 제대로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고 있고, 이 집을 택한 것도 마침 원하는 동네에 방 2개짜리에 발코니가 있었던 게 이거여서였지 저렴해서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문제들을 미리 고지받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unfair하다고 느꼈다. 아무튼 여러 오지라퍼 주변인들로부터 독일의 세입자 권리는 매우 높다는 사실, 방법을 찾아야 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집주인이라는 사실, 최대한 쿨한 자세를 취하는 게 나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배웠고, 이 정신없던 일주일을 호된 배움의 시간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참, 인터넷은 아마도 7월 초에나 설치될 예정이다. 여기까지 이르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인터넷 업체 서비스 센터와 통화를 했는지 모른다. 재택을 하는 데, 그리고 데이터를 다루는 일을 하는 데 인터넷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더 뼈저리게 배웠고, 올해 여름은 이 어수선함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아마도 8월이나 되어야 제대로 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보다 더 그럴싸한 지각사유가 어디 있나. 




요즘 뭐하면서 지내냐는 물음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게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주로 바빠서 정신없는 게 일반적이지만, 실은 바쁘지 않고도 정신없이 지낼 수 있다. 특별히 이렇다 할 게 없는데도 저녁 시간이 되면 피곤해서 눕자마자 잠에 든다. 중간중간 약속들도 있고 처리할 일들도 제법 있다. 피곤한데도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한다. 그러면서 주말을 기다린다.  


"오늘은 침실 정리 완료" 같은 계획이 없는 한 이사 후 정리의 과정은 더디다. 잘 숨어있던 물건들을 다시 어딘가에서 제자리를 잡게 만들어주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리고 왜 이렇게 쓸데없는 것들이 많은지, 짐 속에 둘러쌓여 며칠을 보내고 나면 물건에 질리고 만다. 새로 산 게 없는데도 현재의 수납공간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 무슨 마법일까. 


그래서 물건들을 정리하는 중이다, eBay Kleinanzeigen과 Zalando의 Zircle을 통해서. 이베이 서비스는 독일에서 제일 활성화된 당근마켓 같은 곳이고, Zircle은 독일에서 아마도 가장 인기있는 의류 판매 플랫폼인 잘란도의 세컨핸드 의류판매마켓이다. 흥정과 직접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베이의 특징이라면, Zircle의 방식 중 하나는 의류/신발 브랜드와 상태를 찍은 사진으로 잘란도가 구매하고 싶은 가격을 보여주면 판매자가 그 가격에 동의하는 물건들을 박스에 담아 잘란도로 보낸다. 큰 흠집이나 잘못된 정보가 없는 이상 판매자는 잘란도로부터 판매가격에 해당하는 바우처를 받는다. 판매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가격이 좀 낮더라도 좋은 딜이다. 잘란도가 워낙 가격대가 다양한 브랜드와 물품들을 판매하는 곳이라 나중에 침대시트나 운동복을 구매할 수 있으니 좋은 거래다. 비즈니스 모델로도 제법 손색이 없다. 아직 판매해 본 경험은 없고 친구한테 들은 바다. 


지금까지 천장 높이가 맞지 않아 사용을 못하게 된 행거를 팔았고, 곧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할머니가 쓰시던 잘 관리된 50년대 옷장을 사왔다. 옷장이 행거에 걸었던 모든 옷을 담지 못하는 사이즈라 옷을 버려야 하나 팔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에 새로 만난 친구가 Zircle을 소개해줬고 지금 열심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오늘은 책상 색깔과 맞는 선반을 사러 갔다가 판매자가 파는 다른 걸 봤고 나무로 된 예쁜 체스를 같이 사왔다. 선반보다 체스가 한참 비싼 건 비밀이다. 물론 거래는 '쿨'하게 하지 못했고 두 개를 사는 조건으로 에누리를 더해 좋은 가격으로 사왔다. 


이 격주정리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사회적으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게 내가 좀더 큰 도시로 이사를 와서인지, 마침 코로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는 과정이어서인지, 드디어 여름이 와서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셋 다일지도. 내가 늦는 바람에 2주가 아니라 곧 1주 후에 쓰게 될 격주정리는 좀더 알찬 내용으로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2021년 20-21번째 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