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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늘만 먹었을 뿐입니다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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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은섬 May 12. 2024

'나'라는 세계

새로 알게 된 나의 취향

"내가 수제비를 좋아한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보고 수제비를 좋아한다고 장담하는 엄마. 엄마가 저리 말하는 걸 보면 그 언젠가 내가 수제비를 아주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엄마들은 그런 모습을 절대 잊지 않으니까. 보기만 해도 배부른 자식 잘 먹는 모습이 틀릴 리 없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낯선 취향이었다. 어릴 적부터 면순이 기질이 다분하긴 했지만 내가 수제비를 좋아했나? 모를 일이다. 우스운 건 그 말이 어떤 예언이라도 된 것처럼 지금은 스스로 수제비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웬만한 수제비집은 다 먹어봤고 나름의 맛집도 가지고 있다.

닮은 듯 다른 취향도 있다. 지금껏 조개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조개는 아무리 잘 씻고 오래 해감해도 모래가 남아 지금거리는데, 나는 그 느낌에 질색한다. 그래서 지금껏 자의로 조개구이를 먹으러 가본 역사가 없다.

집 근처 칼국수집에 갔다. 거기 꼬막비빔밥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다들 칼국수를 먹고 있었지만, 내가 고른 건 꼬막비빔밥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엔 중식을 제공하는 수업에 참여했었고 그때도 나는 꼬막비빔밥을 골랐다. 두 번 다 맛있게 먹었다. 이때만 해도 별 자각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신혼이었을 때 꼬막철이 돌아오면 나는 마트에서 꼬막을 구입했다. 과거 배워둔 기술로 꼬막을 가뿐히 까고 거기에 양념장을 끼얹는다. 그 쫄깃한 식감과 감칠맛은 활자로 적고 있는 지금도 입에 침을 고이게 한다. 그런 기억과 합쳐서 깨닫고 마는 것이다.

나 조개를 싫어한다기보다 꼬막을 좋아하는구나!

피자도 마찬가지였다. 내겐 피자와 관련된 로망이 있다. 미드 속에서 주인공이 식어빠진 피자를 여상하게 먹는 그런 모습 나는 뭔가 되게 멋져 보였다.

며칠 전에 집 앞 슈퍼에서 오뚜기 냉동피자 3판에 9,900원 행사를 했다. 아이 간식용으로 사두긴 했지만 출출할 때 피자는 내 위장으로 들어와야 했다. 큼지막하게 자른 피자 한쪽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피자를 한 입 깨물자 전자파로 부들부들한 피자가 입 안을 부드럽게 쓸었다. 딱딱해도 버리기 아까워 매번 참고 먹었던 꼬다리도 솜이불처럼 입안에 포근히 내려앉았다. 피자스쿨의 기본 메뉴, 치즈 피자도 취향에 맞더라니!

나 피자 좋아하네! 난 토핑이 빈약한 피자를 좋아했어!

마지막은 음색에 대한 이야기다.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여자보다 확실히 남자 목소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덕질을 하는 건 언제나 남돌이다. 오케스트라를 들을 때도 항상 귀에 꽂히는 건 베이스 음인 걸 보면 꽤 취향이 소나무랄까?

최애를 고를 때 나름의 규칙이 있다. 일단 마음에 쏙 드는 노래를 유심히 들으며 가장 마음에 드는 음색을 찾는다. 이후 유튜브에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고 외모까지 취향에 부합하다면 본격적으로 덕질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남돌의 목소리가 저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치고 고음에 가까운? 잠깐 혼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나 여자 가수는 영지와 안예은 좋아하는데. 그래서 나는 다시 알게 됐다.

나는 동굴 보이스 같은 저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약간 저음에 개성 있는 목소리를 좋아하는구나!!!

와다다 쏟아진 나의 취향에 관한 깨달음이 새로우면서도 즐거웠다. 나는 꽤 호불호가 뚜렷한 인간이었다. 마흔이 넘어도 나에 대해 더 알아갈 게 있다는 사실이 유쾌했다. 아니 40대에 들어선 후 나에게 진짜 관심이 생긴 것 같다. 나란 사람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되고 객관적으로 보게 된 걸 보면.

뭐든 차야 넘칠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타인에 관한 관심도 생겨날 것이다. 그저 질 낮은 호기심이 아닌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타인을 보는 날 상상한다. 그 즐거울 미래를 기억하며 '나'라는 세계에 대한 탐구를 오늘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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