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철쭉제를 다녀와서
천성산은 동해의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해돋이 명소이고 과거 원효대사의 야단법석이 있었던 곳인 동시에 도롱뇽 소송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봄엔 철쭉이, 가을엔 억새가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철쭉을 보러 갈 때란 소리다.
그곳을 지난 목요일에 다녀왔다. 올해 유독 부지런을 떨고 있는 꽃놀이를 위해서였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나는 원효암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원효암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어 부담이 적으니까. 7km가 넘는, 푸른 여름 산길을 차로 달리는 기분은 한 마디로 끝내줬다.
화엄늪을 앞에 둔 나는 고민에 빠졌다. 올라오면서 철쭉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안내표시판에서 '철쭉제'라는 반가운 지명을 발견했다. 은수고개를 지나 미타암 쪽으로 가면 철쭉제였다. 이름이 철쭉제라면 저곳에만 가면 철쭉을 듬뿍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는 길은 내리막과 오르막의 반복이었다. 얼마 전 10km 마라톤을 한 허벅지가 든든하니 등산객이 드문 숲 속을 혼자 걸어도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를 걸어도 철쭉이 보일 기미가 없었다.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찰나 눈 아래로 붉은색이 어른거렸다. 영산홍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곳이 오매불망 찾았던 철쭉제였다. 알고 보니 거기부터 아래쪽으로 철쭉이 지천이었다. 다음엔 미타암에서 올라와야겠다. 아쉽게도 철쭉은 아직 절반도 피어있지 않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철쭉나무를 보고 있노라니 이것들이 다 피면 얼마나 예쁠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심심할 때 지인들의 카톡 프로필을 둘러보는데, 나이가 들수록 등산 후 정상에서 찍은 인증샷 프로필이 많다. 물론 그 사진들 역시 자주 바뀐다. 꼭 도장 깨기처럼. 다들 왜 그렇게 나이가 들면 등산에 열을 올릴까? 장년층 치고 등산에 빠져보지 않은 이가 없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연과의 합일에서 오는 충만함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편찮으셔 누워만 있을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 그게 아버지가 죽음과 친숙해지는 그만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긴 잠이라고 표현하지 않던가. 죽음에 닿기 전에 그것과 익숙해지는 과정이 잠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등산을 하고 폰 갤러리에 꽃 사진이 가득한 것도 비슷한 심리 같다. 결국 우린 모두 죽고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과 가까워지고 그것에서 위로를 받는 게 죽음을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려서는 매일 뜨고 지는 해를 쫓는 이들이 한심했고 매해 피고 지는 꽃에 관심이 없었다. 내 젊음이 해보다 또 꽃보다 아름답고 눈부셨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제 꽃놀이가 좋다. 나이를 먹었고 죽음에도 한발 가까워지고 있는 것. 이어령 선생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농밀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꽃놀이도 그들의 등산 사랑도 모두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