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을 뒤흔든 폭탄 발언
기상한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기 시작했다. 이럴 때마다 아이의 나약함에 실망이, 그녀의 엄살에 분노가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나를 집어삼킨다. 결석을 할 정도로 아플 리가 없는데도 중학생인 아이는 퇴화해 유아라도 된 것처럼 떼를 쓴다. 엄마는 아이의 자유와 선택을 수용하는 것 말곤 달리 할 게 없다.
속상함 중 적어도 절반은 나의 일정이 사정없이 어그러진 것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계획을 중요시하는 J형 인간. 오늘 나는 일찌감치 도서관에 가서 잠복할 계획이었다. 급작스럽게도 등장해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런 예상치 못한 난관으로 시도조차 못하다니!!!ㅠㅠ
지난주 화요일, 도서관의 모든 출입구가 보이는 자리에서도 나는 미어캣처럼 연신 출입구를 기웃거렸다. 어떤 경로로 도서관에 오더라도 놓치기 않기 위해 가끔 계단까지 살피는 세심함 내지는 집요함 때문에 시간이 아주 더디게 갔다.
도서관에 올 때까지만 해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도서관에 도착해 애탄 기다림 속에 있자 그때부터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20대 시절, 온라인에서 친목을 다져온 이성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직전의 가슴뜀을 상기시키는 박동이었다.
이 방법 말곤 그녀를 만날 길이 없었다. 단톡에선 조용히 나가버렸고, 개인톡은 1이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러 안 보는 것 같았지만 차단을 당하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내겐 그녀의 연락처조차 없었기에 그녀가 듣는다는 수업 앞에서 무턱대고 그녀를 기다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은 약 한 달 전에 있었다. 항상 단톡방이 문제다. 수년째 독서회를 함께 하는 그녀가 뜬금없는 톡을 남겼다. '배려받는 느낌보다는 숨는다는 느낌이 든다. 시스템이 점점 초등으로 가고 있다.' 이 톡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 이었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텍스트로만 구성된 공간인데도 느낌이 그랬다.
독서회 선생님이 인사말을 남기고 단톡방을 나갔다. 그 뒤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녀가 조용히 나가기로 단톡에서 나간 것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단편적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론 단톡에서 시작된 문제의 발언은 그녀와 선생님의 통화로 이어졌고 그때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 그녀의 퇴장은 사실상 퇴출이었다.
생각하는 걸 입 밖으로 내는 걸 솔직함이나 용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의 말을 그러려니 할 수 있었던 건 그녀를 알고 지내온 세월이 5년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좀 그런 사람이었다. 독서회에 오는데 문학책은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무엇도 끼어들기를 용납지 않는 사람. 분위기를 읽지 못하면서 말끝엔 항상 '이건 제 생각이에요'라고 붙이는 사람. 처음부터 난 그녀가 싫었다.
그런 마음이 변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느리고 작은 변화였다. 그녀가 내 생각만큼 이상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니 나랑 닮은 점도 보이고 더 친해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와 너무 달라서 불편함을 안겨주는 그녀였는데도.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여전히 '왜 저래? TMI 미쳤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욕하면서도 이해하고 싶었다. 그건 처음 경험해 보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고, 그것만 알아내면 그녀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어도 최소한 그녀의 반대편에 서고 싶지 않았으며 그녀의 변명이라도 들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 그저 그녀를 험담했던 죄책감 때문이기만 했을까?
그러나 어쨌건 그 마음은 순전히 나의 욕심이기도 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그녀를 찾아가서 떼 아닌 떼를 쓰는 것이 이기적이란 자각 정도는 있었다. 거절도 충분히 생각했다.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심장이 뛰기도 했고. 그날 그녀는 수업에 오지 않았다. 혹시 늦게라도 올까 봐 2시간여를 더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예상치 못한 아이의 병결로 나의 두 번째 시도는 시작도 해보지 못했다. 그날 지인에게 그녀가 수업에 왔는지 물어봤더니 왔었고 표정이 좋더란다. 그녀가 혼자 힘들어할 거란 나의 생각은 모두 오만이었을까? 그녀가 잘 이겨내고 있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 다행에 내가 보탤 뭔가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일이 어그러지고 나니 때가 늦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여기서 내가 뭔가를 더 하면 지나칠 것 같다는 예감. 일련의 일들이 운명인가 싶기도 하고 순리인가 싶기도 하다. 연락이 끊긴 소꿉놀이 친구가 어디 있는지 알아도 굳이 찾아가지 않는 것처럼, 내가 놓아버리면 끝나는 관계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