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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May 26. 2024

당신 폰 자판은 쿼티입니까?

습관 고치기


2차 티타임 장소는 짙은 녹음 속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는 카페였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일행 중 1인이 양말을 벗고 맨발을 의자 위로 끌어올렸다. 카페에 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여인들의 자세였다. 한때 나 역시도 그러했고.    


그날 나는 내 버릇을 고치길 잘했다며 안도의 손짓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릴 적부터 나는 좌식이 익숙했다. 부모님뿐 아니라 어른 앞이라면 언제고 무릎을 꿇는 게 습관이었다. 다리가 저려 감각마저 사라지는 일이 잦았고 지금은 그 자세가 관절에 얼마나 유해한지 알지만, 그땐 그게 너무 당연했다.


내 앉는 자세에 대해 인식하게 된 것 역시 카페에서였다. 편한 자세를 찾다 보니 어느새 의자 위에 다리가 올라와 있었다. 양반다리, 반 양반다리, 한쪽 다리만 세운 자세, 두 다리 모두 세운 자리 가지각색이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앉아 있을 때가 드물었다.

 

한번 인식하고 나니 몸은 편할지언정 마음은 참을 수 없이 불편했다. 건강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직장 생활할 땐 모니터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요즘은 거북목을 경계한다. 그런데 이제 골반도 틀어지고 척추측만증까지 오는 거 아닐까? 몸이 편하면 관절은 아작 난다던데...


의자 위로 다리가 올라가는 습관을 고쳐야 했다. 하는 김에 다리를 꼬거나 발목을 교차하는 습관까지 모두 고치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은 쉬웠지만, 행동은 너무 어려웠다.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다리가 올라가려고 해서 끌어내리길 수십 번.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굳어진 습관보다 나를 괴롭힌 건 다리의 통증이었으므로. 중력의 영향을 과하게 받는 건지 아님 혈액 순환이 안 되는지 다리가 아파 못하겠다.

     

알고 보니 앉았을 때 다리를 가만히 두지 못했던 건 결국 다리에 힘이 없어서였다.


그걸 알게 된 건 그즈음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 덕분이었다. 그때부터  통증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피곤하면 몰려오던 편두통과 엉치 부근의 아픔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자세를 고치는 건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걸렸다.

    

요즘 고치려 애쓰는 습관 중 하나는 스마트폰 자판이다. 요즘 애들은 천지인 자판 자체를 모른다는 얘기가 계기였다. 충격 그 잡채! 아니, 이 편한 걸 몰라? 이건 세종대왕도 쌉인정인데? 평소 트렌드는 어느 정도 쫓아가야 한다고 믿는 나로선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자판을 천지인에서 쿼티로 바꿨다. 그렇다고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닌지라 오타가 아주 심하게 많이 났다. 평소 맞춤법에 예민한 나의 속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할 수만 있다면 오타가 덜 나도록 손가락 끝을 빼쪽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렇겐 못 산다.


천지인 자판 자체를 삭제해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오타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습관은 제법 고쳐진 것 같은데’라는 자각을 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되는데 5개월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 안에서 삶을 배운다. 어쩌면 삶에서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할지 모른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습관을 고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기도 했고. 책상에 앉아 다리를 11자로 내린 채 쿼티 자판으로 메시지를 작성한다. 고치길 정말 잘했다! 고생한 날 칭찬해!

     

나의 시선이 옆으로 흐른다. 옆자리에 앉은, 대칭이라는 걸 모르는 저 중학생의 오만방자한 자세는 어쩌란 말인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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