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빌런이 없다면 내가 빌런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처음 '어반스케치'를 알게 되었을 때 이건 나를 위한 예술 형태라 생각했다. 도시적인 것을 스케치한다. 그건 '도시농부'처럼 내게 아주 멋진 말이었다. 제일 먼저 등록한 곳은 여성복지센터에서였는데, 수업이 나랑 맞지 않아 재등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아파트에서도 수업이 개설되어 다시 배우게 되었다.
첫 수업에선 내내 줄만 그었고, 두 번째 수업에선 2가지 물감을 조합하는 연습을 했다. 물 쓰는 게 어렵고 색 조합도 서툴러 그라데이션 없이 그 색이 그 색었이고, 색조차 내가 원하는 말간 색이 아니었다. 이 수업도 망한 걸까? 실패했던 과거가 다시 재생될까 두려웠다.
그래도 수업 분위기는 좋았다. 비슷한 또래에 같은 입주민이라는 관계가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녹여주는 것 같았다. 단 한 사람, 고만고만한 참석자들 사이에서 누가 봐도 가장 연장자인 그녀는 적어도 나에겐 존재감이 뚜렷했다.
그녀는 진도가 아주 느렸다. 그건 괜찮다. 사람마다 진도가 다를 수 있지. 그런데 그녀가 물음표 살인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듣지 않으려 했지만 내 귀는 이미 그쪽에 고정된 상태였다. 이미 선생님의 맹렬한 지도가 지나갔고 칠판에 필기까지 해주셨는데도 그녀는 안 들은 건지 아니면 나이 때문에 이해가 늦은 건지 비슷한 류의 질문을 하고 또 했다. 듣는 내가 다 기가 빨렸다.
어디 그뿐이랴? 한국인은 취미생활을 해도 '장비병'이라더니 그녀는 줄 하나도 제대로 긋지 못하면서 어떤 도구를 써야 하냐, 그 도구는 어디서 사야 하냐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문제는 그 질문을 할 적마다 손이 멈춘다는 것. 친절했던 선생님의 얼굴에서는 실시간으로 친절함이 증발하고 있었다.
*** 장비병 : 필요 이상으로 장비에 집착하거나 장비구입에 과소비하는 것을 비꼬는 말
취미 때문에 또 배우는 게 좋아서 여러 모임에 나가 본 경험으로 볼 때 말이 많은 사람이 그 안에서 빌런일 확률이 가장 높다. 거기다 그들은 눈치가 없어 냉랭해지는 분위기를 읽지 못하거나 그런 분위기에는 하등 관심이 없다. 드러내놓고 그들을 타박하는 이들은 없지만, 뒤돌아서면 불편한 반응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모임에 나갈 때마다 작은 다짐을 한다. 오늘은 말을 적게 해야지, 다른 사람 말에 더 귀 기울여야지! 그래도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땐 '오늘 괜히 쓸데없는 말 많이 했네? 나 정말 푼수 같았구나!' 반성을 한다. 대화란 건 공을 주고받는 탁구 같은 것. 언제나 적당한 말하기와 듣기의 비율을 알긴 어렵다.
며칠 전 벤치에 앉아 괄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혹시 통화 중인가, 주위에 일행이 있나 그녀를 한 번 더 살폈다. 오늘 기차 안에선 쉴 새 없이 혼잣말하는 아저씨를 보았고. 들어주는 사람 없는 그들이 무슨 마음으로 또 무엇에 닿기 위해 그렇게 많은 말들을 하는지 불현듯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