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나절 폰을 꺼둔 적이 있다.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라서 드문 일이었다. 혹시나 대단히 많은 연락이 와있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폰을 켰다. 웬걸? 야속하게도 문자 하나만 와 있었다.
스팸인 줄 알았던 문자는 내가 책을 입고한 인디펍에서 온 것이었다. <밀리의 서재> 독립출판물 기획전 참여에 관련된 메일이었다. 전자책을 출간해 공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묻고 있었다. 전자책(e-book)은 딴 세상인 줄 알았다. 내 책이 텍스트가 아닌 목소리로 독자와 닿을 수 있을 기회. 책을 읽기 싫어하거나 읽을 수 없는 독자와도 만날 수 있겠단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실제로 어떤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아 잠깐 아래를 내려다봤던 것도 같다.
전자책 출간에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비용을 지불하고, 배타적 발행권 설정계약서에 처음으로 전자 서명을 했다. 내지와 표지 PDF 파일, 원고를 보냈다. 새 책은 내 출판사 ‘오전 열시’가 아닌 ‘인디펍’으로 발행됐고 종이책과는 다른 ISBN이 발급됐다.
밀리의 서재 이후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리디 등에도 입고되었다. 네이버에 내 책을 검색하면 꽤 많은 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신기했던 건 네이버 블로그의 글감 책 섹션에서도 내 책이 검색된다는 사실.
몇 달 후에 또 다른 메일을 받았다. 이번엔 7월에 영풍문고에서 있을 독립출판 기획전 참여 의사를 물어왔다. 대형 서점에서 내 책이 들어가는 기회를 포기할 순 없지!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때 ISBN이 필요해서 나는 급하게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시스템에서 ISBN을 발급받았다. 발행자 번호 신청을 먼저 해야 하고 이때 출판사 신고 확인증이 필요했다. 마음이 급했는데 다행히도 2일 만에 ISBN이 나왔다. ISBN이 있으면 인디펍에서 알라딘 입고를 해준다. 그래서 이번 기회로 알라딘에 종이책을 입고시켰다.
그렇게 7월에 종로 본점을 포함한 전국 여섯 군데의 영풍문고에 내 책이 전시되었다. 7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에 부산 광복점을 찾았다. 뭔가 최애를 만나는 기분으로 서점에 들어섰다. 매우 흐뭇했지만 부끄러워 마치 지나가는 독자인 것처럼 슬쩍슬쩍 사진을 찍었다.
처음 책을 만들고 입고를 할 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책이 e-book으로 발간되고 또 영풍문고에서 들어가다니! 기회는 책이란 물성을 가진 결과물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책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기회의 차이로 다가왔다. 노트북 안에 소설이 셀 수 없이 쌓여 있다고 하더라도 책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꿈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홀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내가 만들었지만 나를 떠난 텍스트가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지 궁금해졌다. 많은 작가가 책이 나오면 더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더니 그건 해석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도 모험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나만의 모험이 아닌 내 활자들의 모험이기도 했다. 나는 당연하게도 성심으로 내 활자들을 응원하다. 내 글이 독자에게 닿을 때까지 활자들의 모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