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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Feb 25. 2024

나도 내가 후회할 걸 알아

언젠가 내가 고아가 되는 날

언제나 꿈은 하나의 계시였다. 평소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는데, 꿈은 죽음보다 무서워해야 할 건 살아가는 거라고 말했다. 자살하는 사람에겐 사는 건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이겠지. 그 깨달음에 잠이 깨서도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엄마는 사는 게 두렵지 않으세요?"


기차로 떠난 부산여행에서 우리의 목적지는 줄 서서 먹는 피자집이었지만, 내겐 꼭 들려야 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바로 깡통시장이었다. 그곳에는, 일본에 가면 꼭 사 와야 한다는 소화제가 있었다. 얼마 전 이 약을 먹어본 시어머니가 효과가 좋아 신기하셨단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고. 평생 소화불량으로 고생한 우리 엄마가.


시장 안 어디에서 약을 파는 줄 몰라 시어머니에게 위치를 물어봐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고민이 무색하게 시장 입구부터 떡하니 보이던 약. 첫 번째, 두 번째 모두 가격이 같기에 다 똑같은 줄 알았더니 천 원, 2천 원 더 비싼 곳도 있었다. 그래도 일반약국에서 파는 제품보단 확실히 쌌다.


의리로라도 첫 가게로 다시 가야 하나 하고 있을 때 같은 금액의 가게가 나타났다. 이때다 싶어 바로 약을 샀다. 온 김에 동전 파스도 살까? 그런 나를 따라 친구들도 하나, 둘 사기 시작했다. 마치 함께 일본 여행을 온 것도 같았고, 우리가 한국여행 온 일본 여행객 같기도 했다.


미리 사놓은 바르는 한방 파스와 양배추 소화제 그리고 동전 파스. 그 약들을 보고 있노라니 다 엄마의 고통을 줄이는 약이었다. 특히나 한방 파스와 동전 파스는 아플 적마다 막무가내로 여기저기 발라대는 물파스를 대신할 것이다. 지금껏 물파스는 근골격계 질환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든의 엄마가 생각해 낸 궁여지책이었다.


"엄마는 죽는 게 무섭지 않아요?"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이런 질문을 하기도 처음이었다. 가족은 너무 가까워서 속마음을 드러내긴 조심스러운 관계다. 엄마는 치매나 중풍으로 아플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애써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것처럼 질문 자체를 어색해하셨다. 그런 그녀에게 ‘엄마는 사는 게 더 무섭지 않냐’고 묻는 건 더 못 할 짓 같았다.


며칠 전 엄마는 침술원에 다녀오셨다. 당신의 단골인 그곳은 시각 장애인이 운영하는 이름난 곳으로 그는 엄마의 허리에 협착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방문한 정형외과에서 한 엑스레이 판독 결과도 같았다. 그러나 정형외과, 내과 어디에서도 엄마는 침술사가 권한 엉덩이주사는 맞을 수 없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보나 마나 협착이 있으니 주사를 놔달라고 떼를 썼겠지.


나의 부모님은 노인네들끼리 병원에 가면 무시를 당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병원에서 필요한 절차들은 돈벌이를 위한 과잉진료로 생각했다. 내가 목청 높여 설명을 해봤자 '원래 늙으면 아픈 거다, 이렇게 살다 죽지 뭐' 같은 소리로 자식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노인의 아집에 학을 떼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를 가르치듯, 혼내듯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파서 가장 속상한 사람은 엄마일 텐데…. 내가 답답해하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낸 건 결국 걱정되는 마음이었다. 아픈 엄마의 오늘이 속상한 딸의 마음이었다. 힘들지 않냐고 어보고 그저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어땠을까? 나의 태도 또한 노인들의 아집과 다를 바 없었다. 엄마는 내게 해결법을 알려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나도 고아가 되겠지.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 쓸쓸해진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가장 그리워질 일. 부모님 집에서 걷기 운동을 하면 엄마가 꼭 따라나선다. 내가 걱정이 되는 거다. 그러면서 엄마도 운동한다는 거절할 수 없는 핑계를 댄다. 걷는 속도가 다르고 엄마는 금세 지친다. 그래서 먼저 집에 들어가시거나 중간에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후에 엄마와의 이 시간이 얼마나 그리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마음과 다르게 요즘 나는 엄마와의 통화가 꺼려진다. 통화하려다가도 슬그머니 마음을 접는다. 오지도 않은, 마음 아플 일이 두려워 내 마음은 쉽게 뒷걸음을 친다.


사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죽음은 모든 것의 종말이지만, 삶은 후회할 일을 꿋꿋이 하고 마는 이런 미련함의 축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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