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거대한 식탁이 있다. 가로만 무려 235cm, 세로도 100cm. 고작 세 식구인 우리에게 이 식탁은 지나칠 정도로 여유가 있고 그래서 더 좋은 식탁이다. 이곳에서 밥을 먹는 건 기본이고 앉아서 해야 할 집안일을 하고 또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러기 위해서 작정하고 마련한 식탁이다. 물론 이 글도 식탁에서 쓰고 있다.
그래도 나는 가끔, 요즘은 자주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장소가 사람의 마음가짐을 결정한다. 주부 본능은 이곳에 앉아 있어도 매의 눈으로 할 일을 찾아낸다. 아니 찾지 않으려 애써도 할 일이 눈에 걸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런 일들에 눈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각 잡고 글을 쓰려던 마음에 금이 간다.
처음 탈출한 곳은 집 앞 무인카페였다. 차 한 잔 그리고 있고 싶은 만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의 값이 고작 2천 원 남짓. 이곳에선 글쓰기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 것 같다. 노트북에 콩 박았던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면 계절이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파트 북카페에도 여러 번 갔다. 가깝다는 건 최고의 장점이고 오픈 시간이 제멋대로인 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도서관 컴퓨터실의 노트북 자리도 꽤 괜찮은 대체장소였다. 두 곳은 가성비가 좋지만, 전자는 탈출하는 맛이 아쉬웠고, 후자는 사람들이 오가며 발생하는 통제 불가능의 소음이 단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 알게 된 장소도 있다. 스터디 카페, 일명 스카. 신문물에 도전하는 기쁨이 있었고, 백색 소음 속 칸막이 안에서의 몰입감이 대단했다. 거기다 무한정 제공되는 음료와 간단한 간식 덕에 비용이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그 많은 곳을 거쳐 정착한 곳은 스타벅스였다. 주말엔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지만, 나 혼자 앉을 자리는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의 바다 안에서 나만의 섬을 만들고 그 안에서 글을 쓰는 게 행복했다. 그래서 한동안 틈만 나면 스타벅스로 출근했다.
요즘의 나는 스타벅스에 가는 것조차 귀찮다. 마음이 바뀌니 그곳에 차를 마시느라 쓰는 돈도 아깝다. 새로 생긴 책상 때문일까? 에세이 <쓰고 싶다 쓰기 싫다>를 읽고 결심을 했다. 이 책은 작가들이 글 쓰고 싶을 때와 글쓰기 싫을 때에 관해 담고 있는데, 이걸 읽고 불현듯 내 방에 글 쓸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방은 아주 작은 방인데도 꾸역꾸역 책상을 넣었다. 그리고 지금껏 그곳에 앉은 횟수 1회.
결국, 마음가짐은 장소를 결정한다. 마음가짐과 장소는 사이좋게 서로를 주고 받는다.
사실 나는 이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소설을 쓰기 싫다. 그것은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 마음을 인정해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쓰지 못할까 봐 두렵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은 쉽게 시소를 타고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기울어진 곳이 매번 똑같지도 않았다. 내가 글 쓰던 장소가 변해온 것처럼. 올해 나는 브런치에서 열심히 에세이를 쓰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소설의 끄트머리를 겨우 잡고 있다. 이럴 땐 버티는 게 답이니까. 그러다 보면 에세이로 기운 시소가 폴짝 뛰어오를 날도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