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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Feb 04. 2024

꾹꾹 천천히 말랑하게

2024 올해의 계획

1월 1일은 12월 31일의 다음 날일 뿐이니 굳이 새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 그저 살면서 '이걸 해야겠다' 다짐한 걸 모았다. 근데 새해가 되었네? 나에겐 거대한 계획보다 이런 작은 계획들이 맞다.     


1. 발 안쪽에 힘주고 걷기


직업과 무관하게 나는 사람들의 뒷모습, 정확히는 발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특히 여름에 그 차이가 확연한데 대개 신발 바깥쪽이 닳아 있고 발이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 이렇게 벌어져 있다. 무방비하게 걷다 보니 그렇게 됐을 텐데 그게 발 건강, 나아가서는 척추 건강에 좋을 리 없다. 


‘편한 자세는 몸이 아작나는 자세다.’


아이에게 나의 뒷모습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의 대답은 ‘조금 그렇다’였다. 건강한 걸음걸이에 관심이 있지만, 나는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발걸음에도 진심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걸을 때 의식적으로 발 안쪽에 힘을 주어 걷도록 노력하고 있다.     


2. 음식 천천히 먹기


나는 음식을 천천히 먹는 사람이었다. 먼저 먹은 사람이 멀뚱멀뚱 쳐다보는 건 좀 멋쩍은 일이었지만, 빨리 먹어야 하는 상황은 내게 스트레스다. 내 나름의 섭식 철학도 있다. 음식 맛도 모른 채 음식물이 관성적으로 식도로 넘어가는 건 별로다. 액체를 단번에 마시는 것, 반찬이 뭐든 밥에 넣어 비벼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다.     


본래 나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배가 고프거나 음식이 맛있으면 허겁지겁 먹는다. 몸은 욕망 앞에 무릎 꿇었어도 정신은 그대로인지라 식사 후 자괴감이 든다. 한 마리 짐승이 된 것 같다. 배까지 부르다면 불쾌하다. 먹는 거로 이럴 일인가?


어릴 적부터 소화기 계통으로 편치 않았던 나였다. 게다가 노화는 위장의 기세를 꺾는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음미하는 건 내게 중요하다. 그래서 이제 다시 천천히 먹는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왼쪽 씹었으면 다음엔 오른쪽, 그렇게 천천히.


3. 말랑콩떡자아 없애기


나의 최애 아이돌은 라이브 방송 때 짓궂게 다른 멤버를 놀리고 약간의 허세도 보인다. 방송의 재미를 위한 부분도 있겠지만 본인 성격에 그런 부분이 조금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그가 어린 동생이 지적하고 뭐라고 하면 또 허허실실 웃는다. 다른 멤버가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고 하면 저항 없이 다 해준다. 그런 모습을 보고 팬들은 ‘자아가 없다’라고 표현한다. ‘말랑콩떡’ 이란 표현도 그에게 자주 붙는 표현이다. 거기다 그냥 잘 웃는다. 버추얼 아이돌이라서 그가 웃을 때 반짝이는 이펙트가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사르르 녹고 만다. 


최애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런 모습이 정말 좋다. 글을 쓰면서 타인의 피드백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방어적이 되고 때론 공격적으로까지 변하는 나.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닌 걸 아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자아 없는’ 태도를 닮고 싶다.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 충고의 말을 들어도 반박하지 않고 ‘그럴 수 있겠거니’ 유연히 듣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다고 내 자아가 없어질 정도로 약하지도 않다.


이 외에 ‘읽어야 할 책보다 읽고 싶은 책 읽기’와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목표 중 하나다. 올해 나는 발 안쪽에 힘을 주는 발걸음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가방 안엔 내가 읽고 싶은 책 한 권이 들어 있겠지. 모임에선 말랑콩떡이 되고 끝난 후엔 마음 맞는 이와 함께 느린 식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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