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싱 18일 천하
피어싱 장착부터 탈거까지의 기록
찌르는 듯한 고통이 길게 이어져 온몸에 균열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몸 여기저기에서 쩍쩍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항상 지금이 고통의 최고봉이길 기대했다. 이제 통증은 내리막만 있기를.
2023년이 가기 전 꼭 피어싱하고 싶었다. 과거부터 쭉 해오던 생각은 아니었는데 한 번 그 생각이 들자 그 마음이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12월 31일 대학가에 갔다가 눈에 띄는 피어싱 샵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오른쪽 귀에 링 피어싱 두 개를 했다.
40년이 넘게 살면서 내 귀를 이렇듯 자세히 본 건 처음이었다. 귀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내 귀는 끝부분이 말린 다른 귀와 달리 넓적하게 펴져 있었다. 피어싱하지 않았다면 내 귀는 있는 줄도 모른 채 그저 몸에 붙어 있기만 했을 것이다. 내내.
저녁에 진통제가 포함된 약을 먹고 잠들었음에도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깼다. 새벽 4시 30분이었다. 이 긴 밤을 끝내기 위해선 진통제 한 알이 더 필요했다.
며칠 전 갑자기 피어싱한 귀가 불에 덴 듯 뜨거워졌다. 실수로 옷이라도 닿으면 악 소리가 나올 만큼 고통스러웠기에 모든 신경이 귀로 향했다. 빨갛게 부은 귀는 타인의 귀 같았다. 처음 피어싱을 했을 때 느꼈던, 불타던 느낌은 다음 날이 되면서 바로 옅어졌었는데, 방심했구나! 내 살성이 좋다고 자만했구나!
피어싱을 뚫은 귀는 정말 맘에 들었다. 그리고 피어싱을 뚫을 때의 고통, 염증으로 고생한 시간이 아까웠다. 억울했다. 항생제까지 먹고 있으니 혹시 이제 나아질 일만 남았다면 조금 더 버티면 되지 않을까? 잠에 깨어 있으니 고통이 좀 덜한 것 같기도?
그러나 이제 머리보다 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이 피어싱은 제거해야 한다는 걸. 어디서 제거해야 할까? 검색 삼매경에 빠졌다. 찾고 있는 답은 보이지 않고 혹 또는 뭉우리가 생겨 변형이 온 사진들이 나를 공포에 떨게 했다.
자고 일어나면 귀가 좀 나아있길 기대하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피어싱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병원 그러니까 내과와 이비인후과, 피부과 모두에서 진료는 가능하지만, 피어싱 제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 귀를 살려준 건 역시 피어싱 전문가였다. 사장님은 타 삽 제품이라는 이유로 개당 만 원의 비용을 받고 피어싱을 제거해주었다. 부기가 심해 링 피어싱이 거의 파묻힌 상태라 펜치로 피어싱을 잡기조차 쉽지 않았다. 피어싱을 빼내고 고름을 짜내는 과정은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그렇게 뚫은 지 18일 만에 나는 피어싱을 제거했다. 어쩜 날짜도 18일일까? 연골막염이 우려되는 상황이라서 피부과에서 소독과 재생 레이저를 받고 연고도 발랐다. 만원이 되지 않는 치료비가 나왔다. 몸에서 이물질을 제거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개운하고 고통마저 사라진 듯했다. 그날 밤 처음으로 통증 없이 잠들 수 있었다.
결과만 보면 뚫었던 피어싱은 사라졌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만 남았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하고 싶었는데 시도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후회가 남았을 것이다.
피어싱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도 알게 되었다. 피어싱도 직접 해보니 내 시선이 달라졌다. 버스 안에서 어린 학생이 귀에 피어싱을 한 걸 봤는데, 과거라면 불량해 보였을 그게 예뻐 보였다. 타투도 그랬지만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뜬 기분이었다. 내가 알던 세계가 깨지는 짜릿한 느낌이 생생했다.
현재 귀는 잘 아물고 있다. 피어싱을 뺀 다음 날 저녁부터 살짝 간지럽기 시작한 걸 보면 새살이 잘 돋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무의식중에 긁을까 조심해야 하지만 그간 거쳐왔던 고통에 비교하면 지금은 그야말로 간지러운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