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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
Spillover의 저자 David Quammen을 비롯 일부 과학자들의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오는 신종 병균으로 인한 팬데믹은 시간문제라는 목소리가 있어왔고, 2019년 겨울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가 발견되었다는 중국의 발표와 함께, 2016년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누르고 대통령이 된 힐러리가 대통령인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 사회는 발 빠르게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 실시와 함께 백신개발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기존의 SARS, MERS,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처럼 그냥 두면 지나갈 것을 너무 과잉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았고, 우리는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여행금지령이 내려지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았지만 그래도 조기에 근원을 찾아 확산을 멈추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 2019년 봄에 내가 사는 곳의 주립대로 교환교수로 와 있었던 중국교수 J는 계획대로 이듬해 2020년 5월까지 머무르고 귀국했고, 같은 해 말 경 드디어 코로나 종식이 선언되면서야 예정보다 한 해 늦은 2021년에 우리는 에코가 몇 달간 초빙교수로 가기로 한 러시아의 한 도시로 떠났고, 그곳을 거점으로 미국에서는 너무 멀어서 미루기만 하던 유럽 여행도 천천히 몇 달간 하고는, 다시 이듬해 에코는 J가 있는 대학의 초대를 받아 중국에 초빙교수로 간다.
(마른 하품)
2019년 말, 바로 며칠 전 함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교환교수 장칭이 어쩐 일인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던 아침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내 물음에 그는, '슬프다, 시아버지가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라고 답했다.
놀라서 원래 지병이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그건 아니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중국의 문화는 잘 모르지만 동양권이라 혹 가보지 않아도 되냐고 물었는데 역시 말을 얼버무리며 괜찮다고 어차피 귀국이 몇 달 앞이니 좀 당겨 가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2019년 1월 경 뒤늦게 중국의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그는 원래 5월 봄학기를 마칠 때까지 있을 수 있는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예정대로 곧 그가 있는 대학으로 에코도 초청하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쟝칭는 우한의 한 대학교수다. 그리고, 심증일 뿐이지만 J의 시아버지가 갑자기 죽은 시기는 코로나 초기, 중국이 아직 쉬쉬하고 있던 시기와 겹친다.
그리고 곧, 2020년 초만 해도 우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계속 예정대로 추진하자던 러시아의 대학은, 확진자수가 급증하면서 국경이 봉쇄됨으로써 모든 계획이 취소되었고, 그렇게 2022년 가을까지 우리는, 계획했던 러시아와 유럽은커녕, 한국도, 아니 미국 내 어디도, '아무 곳'에도 가지 못했고, 동부에 살고 있는 아이도 일 년 반동안 집에 오지 못했다.
2023년 1월 현재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 수는 6백81만 명 이상 추산이다.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없지만 가까운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이 병으로 외롭게 죽어갔다.
...
살다 보면 가끔,
정말 뭐든 억지로는 안되는구나,
하는 순간이 있다.
주식시장이나(!) 내 맘대로 안 되는 아이들 일처럼 '당연히' 내 맘대로 가 아닌 걸 말하는 게 아니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일이 그르칠 이유가 별로 없는데 느닷없는 어떤 사건이나 정황으로 성사가 안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일이 되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될 것 같던 것이 박자가 척척 맞으면서 또 덜컥 되어 버리(?) 기도 한다)
나도 물론 살면서 크고 작은 이런 벽을 만난 일이 있었고, 최근 코로나로 인한 많은 일이 그랬다.
몇 년 전 갑자기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부쩍 부모님이 연로하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고, 그래서 5년 전 안식년을 포함해서 이적지 여력이 나면 한국에 갔을 뿐, 미국과는 지구 반대편인 유럽은 미루고 미루게 되었었다. 그래서 에코가 러시아 초빙교수 자리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바이칼 호수도 좋지만, 그곳을 거점으로, 가보고 싶던 유럽 여러 나라를 거기서 받은 강의료까지 보태 넉넉히, 여름방학 두세 달 정도에 걸쳐 천천히 둘러볼 심산이 더 컸었던 것이다.
우스운 것은,
그다지 쉽게 살아지지 않았어서 그런지 어려서는 별명이 덜렁이인 내가 어느새 남들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괜한(?) 염려가 많아서, 제법 큰 비용을 들여 한국과 미국 내 이곳저곳, 서류를 받고 보내고 다시 받으며 몇 달에 거쳐 꼼꼼히 서류를 준비하면서도, 워낙 나라가 이상하니까(!) 혹시 이래 놓고 무슨 이유로든 비자가 안 나오는 건 아닌가 걱정은 했어도, - * 러시아는 관광비자는 무비자지만 워킹 비자의 경우 웬 에이즈 검사(!?)도 해 내야 하고, 모든 서류를 번역은 물론 공증 (그냥 notary도 아니고 Apostille ) 해서 내야 하고, 같은 독재 공산국가인 중국도 뭘 하나 신청하려면 이미 은퇴한 장인의 이름과 전 직업(?)까지도 적어내라든가 졸업증명서로는 안되고 학위 졸업장 카피가 필요하다든가 하는 식으로 마찬가지로 골치 아프다 -
전염병이 돌거나(!),
심지어 전쟁이 날 것 (!! : 같은 해 말까지만 해도 그 대학에서는 코로나가 진정되면 꼭 오라고 했었다. 물론 다시 그 비자서류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일은 관두고 그냥 관광으로나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였으나... 그러하다. )
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해 3월 말까지만 해도 비자가 나오는 동시에,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비행기표 예약은 물론 (사태가 사태인지라 이건 모두 환불을 받았으니 그나마 그건 다행이라 해야 할까), 러시아에 몇 달간 머물 숙소도 다 예약해 놓았었고( 오래전 SARS로 없는 살림에 호텔비를 날린 후로는 무조건 돈을 더 주고도 환불가능한 예약을 한다. 이런 사건이 나의 인생 전반을 달라지게 하지는 않겠지만 : 수많은 가닥 중의 하나의 우주가 갈라져 나가도 그중 몇몇은 다시 같은 평행 우주로 다시 합해지고 다시 갈라져 땋은 머리 형태가 되는 사례) , 심지어 구글 지도로 먹고 살 슈퍼마켓이며 식당도 다 찾아놓았었으니 말이다. ( 어디든 언어가 딸리면 문화체험이고 뭐고 재래시장보다는 대형 슈퍼마켓이 최고다)
이렇게 뭔가 '영 안 되는'것을 맞닥뜨리면 속상하고 우울해지기보다, 외려 뭔가 그랜드 캐년 낭떠러지에 가 선 거 같은, 경외감 awestruck이 든다.
모름지기 인간은 아무리 신심으로 손바닥이 닳도록 기도를 하고, 무릎이 나가도록 백팔배를 올리고,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니고 굿을 하고 부적을 쓰면서도,
그러다 일이 잘 되면 은근히 자기도 그 공을 자기에게 돌리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일이 잘되어갈 때보다 벽을 만날 때 외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겸허해지면서 얻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다.
뭔가, 구름 사이로 얼핏 '신'의 얼굴을 만난 듯한 느낌.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멀리멀리 달려가 만난 다섯 개의 바위, 부처님 손바닥을 맏닦드린 순간.
그렇게 악마와의 내기로 욥을 고생시키고 나서, 아무리 몇 곱절로 돌려주었다고 해도 죽은 자식들은 돌아오지 않는데, 대인배답게(?!) 슬쩍 미안한 내색을 할 만도 하건만 고작해야
'내가 하늘과 땅을 창조할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는 말로 설명(?)을 대신한 '신'.
가진 것이 있으면 (좀 컸지만) 잃은 것도 있고, 그런가 하면 ( 복제인간도 아니고 떠나간 자식을 다른 자식으로 돌려놓는 건 말도 안 되지만) 도로 더러 회복이 되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 덜컹덜컹, 그러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떠나갈 순간이 되면, '끝'을 만나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아도 그만, 변도 없고 이유도 없고, 덧없이 끝인, 우리의 삶.
생각해 보면 욥의 이야기는 삶의 여정을 그린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시난고난, 좋은 날이 있으면 괴로운 날이 있고, 또다시 좋은 날이 돌아오는 가 해도 그만 끝을 만나면 그걸로 그만인 우리의 삶.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이 세상을 지어낸 존재, 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
주워들은 얘기 :
어떤 사람이 한 밤중에 나무에서 떨어지게 생겼는데, (왜 밤에 나무에 올랐는지는 설명을 못 들음)
나뭇가지를 죽어라고 잡고 늘어지며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더니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리길
'"놓아라"
그래서 이 사람이 그 목소리를 믿고 탁 놓은
게 아니고.
뭐래, 자기 일 아니라고 진짜 너무하네, 투덜투덜
하고 새벽까지 붙잡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날이 밝고 보니 발 밑바닥에서 고작 한 뼘 거리에 매달려 있더라는 이야기.
그러하다.
생각해 보면 사실은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하루에도 열두 번이다.
내 몸이라도 내 마음대로라면 나는 왜 호산구성 위염(몸에 맞지 않는 음식물을 섭취하면 위에 백혈구 수가 증가하는 일종의 면역질환이다)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면 3일에 특송으로 출발했다는 물건은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으며, 실력으로 되는(?) 거라면 대학입시, 아니 고호가 죽고 나서야 유명해진 '해바라기'까지 갈 것도 없이,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재료로 담근 김치가 왜 어떨 때는 맛있게 되고 어떨 때는 망치고 그러겠는가.
하여, 오늘도 겸허해진다.
굳이 문젯거리들을 나열할 것도 없이
글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하루하루
그저 숨을 고르며 뚜벅뚜벅 살아갈 일이다.
...
얼마 전 에코가 내년쯤에는 정상화되지 않겠느냐며 안식년으로 이탈리아 작은 대학 자리가 하나 있다고 어떠냐고 묻는데도 반(만) 농담으로 이번에는 이탤리에 무슨 일 날까 봐 선뜻 그러자는 소리가 안 나왔었다. 그런데, 에코가 올여름 하와이대학에서 몇 달간 초청을 받아, 오랜만에 드디어 한국방문 후 허둥지둥 또 하와이를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을 안 바로 다음 날 하와이의 한 섬에서 화산이 폭발했고, VR에 한 엡에서는 세상 많은 곳 중에 하필이면 하와이가 원자폭탄을 맞는다는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불현듯, 이렇게 또 하나의 우주가 갈라져 나가는가 하는 두려움이 스며든다.
가끔 '소심증'이라는 말은 평가절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미지 : The Creation Of Adam-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