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살면서 뭔가 자꾸 일이 꼬여 들어가거나,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일이 벌어지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삶이 '트루먼 쇼'같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리얼리티 쇼'라서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기 전 시청률을 높이려고 그러나 생각을 해 보거나, '매이트릭스'처럼 이것이 가상현실 속이라서 모든 것은 정신에 달려있으니 뭔가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혹은, 적어도 설마 몰래카메라인지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러시아 전쟁이 내 탓인가 생각해 본 것을 여기서 고백한다.
이른바 : 그저 내가 잘 지어놓은 내 '세트'에서 잘 살고 있지 않고 괜히 따순 밥, 아니 따순 햄버거 먹고 실재하지도 않는 러시아란 곳을 간다고 한 바람에, 이 쇼(!)의 제작사에서 매체에서 사진으로만(생각해 보라, 실제 내가 가 보지 않은 곳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다녀왔어도 그저 '카더라'일뿐이다!) 보여주던 러시아 세트를 짓는 비용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한 바, 급기야 제작진이 코로나라는 질병을 지어냈고( 가까운 사람 중에는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이 없고 에코와 나와 아이는 '아직도'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내가 철딱서니 없이 그래도 그동안 러시아어 공부한 것이 아까우니 코로나가 종식되는 데로 자비로라도 러시아를 '놀러 가기라도 하자'라고 결심하는 순간 그것도 막으려고 러시아에 전쟁이 터졌다,는 시나리오이다.
그렇다면, 나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 트루만, 아니 '숨은 연못 쇼'라면, 전쟁조차도 일어났'다고 할' 뿐이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니까 결국 아무도 전쟁으로 죽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내가 직접 목격하지 않은 모든 사건사고는 일어나지 않은 게 된다!
허??
그리고 바로 이게 평행우주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어머, 이 글쓴이가 알고 보니 음모론이나 믿는 좀 이상한 사람이네, 하고 화들짝 놀라는 당신,
꿈은 그대가 꾸어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그렇다면 이 세상은 누가 꾼(!) 것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두둥!
(허?)
살수록 드는 생각이, 모든 것은 완전히 내 탓이고, 동시에 모든 것은 완전히 무작위라는 패러독스가 진실이 된다.
많은 재해가 따지고 보면 인재이듯, 얼핏 완전히 무작위적인 실수(?)로 일어난 사고 같아도 저변의 원인이 있다는 뜻으로 '완전한 사고란 없다'고도하고, 반면,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는 그저 어떤 결과가 일어날 '확률이 큰 쪽으로' 움직일 뿐이기 때문에, 때로는 열심히 했는'데도' 시험에 실패하고,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결국은 불이익을 받는 일이 있으니 따지고 보면 모든 게 그저 운인 것도 같다.
'뜻밖에' 일어나는 일이 많고, '보기보다' 많이 못 먹고, '생각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면, 예상이나, 느낌이나 '촉'이라는 것도 다 과대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세상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상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다.
복권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복권은 안 사는 사람이 았다듯, 그러니까 우리 모두, 스스로가, '잘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애초에 '잘 되는 방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어느 우주에서의 나는, 작게는 다른 친구들이 있고 크게는 다른 형제들이 있고, 어딘가에서는 작게는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크게는 지금 문득 티브이에서 고개를 돌려 자판을 두드리는 나를 향해 한 번씩 빙그레 웃는 남자가 에코가 아니고, 어느 우주에서의 나는 작게는 지금과 사는 곳이 다르고, 그리고 크게는 살아 있지도 않다.
스티븐 킹은 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뻔(!)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천진난만'해 보여도 아이들이 사실은 어른보다 더 위험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를 포함한 우리는 사실 하마터면 큰 일어날 뻔(!)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대를 일단 살아있다고 간주해도 좋겠지)
나도 앞에 나열한 사건(?)들 외에도 죽을 기회(!)는 많이 있었다. 198X 년, 고속도로 2차로에서 역주행하던 차를 피하려던 고속버스가 가로막 바로 앞에서 정지되지 않고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더라면, 혹은 200x 년, 간선도로에서 뒤를 보지도 않고 후진해 나오던 커다란 트럭이 받아서 결국 폐차해야 했던 우리 차가 고물이나마 승합차가 아니라 납작한 승용차였더라면 (빨려 들어갔을 것이라고들 하더라), 201x 년 워싱턴 디씨에서 우리가 알링턴 국립묘지를 갔던 날이 아니라 그다음 날 갔더라면 (같은 선 기차 충돌사고로 9명 사망 70명 부상),
그리고 내가 200X 년 앞날이 너무나 막막할 때면 홀린 듯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던 캠퍼스 아파트 옆 기찻길로 기어이 뛰어들 용기(?)를 냈더라면.
얼마 전 내 최애 팟캐 중의 하나에서 한 노 천체과학자가, 자기는 여전히 외계인이 있다고 믿고 싶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오디오 파일이라 검색을 하기가 어려워서 정확한 소스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진행자가 왜 그렇게 믿느냐고 묻자 (근거 같은 것을 물은 것이었을 텐데), 그는 짧은 한숨과 함께 잠시 머뭇거리더니,
"왜냐하면 나는 80이 넘었기 때문이지"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일순 의아한 가운데, 그는 말을 이어가기를,
"알다시피 나 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우주 저기 어딘가에 실제로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뭔가 (내가 평생을 연구한 것이) 헛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잖아."
그러자 진행자도 바로 그의 의중을 알아듣고, 그래, 그렇지, 하는 분위기기 나는 좋았다.
그의 꿈도 이해했지만, 누군가가 자기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데, 어머 얘 그런 말 하지 마, 하고 텅텅 빈 깡통 같은 빈말 하지 않고, 그렇지, 너는 늙었지, 하고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와, 지성과, 열린 태도가 편안해졌다. 코로나 백신의 실험단계에 참여한 70대 노벨상 수상과학자도, '내가 이대로 살면 어차피 죽을 나이와 경우의 수와 코로나 실험으로 죽을 확률을 계산해 보고 결정을 내렸다'라고 했듯이 주어진 시간을 그렇게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날'이 줄어드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어쩌면 그렇게 더더욱 환상적인지도 모른다.
80년대에 대통령이 되겠다던 어린이들이 모두 대통령이 되었다면 군웅할거, 춘추전국시대가 찾아왔을 것이듯이, 고작 인기 유투버가 되겠다는 것이 어린이들의 '꿈'이고, 청년들의 취미는 비트코인도 아니고 그 조각 긁어모으기인 요즘 세상에,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꿈꾸는 것이 그야말로 '꿈' 아니던가.
나이 든다는 것은 '가능성'이, 그러니까 원하는 방향으로는 물론이고, 모든 것의 절대 경우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일이다. 어느 날 0에 수렴하면 죽는 것이니까.
영어로 '늙은 개는 새로운 재주를 배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늙으면 고집이 세져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 들지 않는다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울 능력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누구는 몇 살에 무엇 무엇의 데뷔를 했으니 (늙은) 너도 포기하지 말라는 식의 응원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대개 이런 경우는 이때 실제로 처음 '시작'을 한 게 아니라 그 나이에 열매를 맺었을 뿐인 경우도 많거니와, 사람마다 여건은 다 달라서, 나이가 들면 누군가는 눈이, 누군가는 전반적 건강이 퇴화되고, 하루가 다르게 정신도 흐트러지기 일쑤라, 아차! 하고는 일어나서 왜 일어났는지 기억도 안 나고, 냉장고를 열고 무엇을 꺼내려 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파이팅(!)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운동도 안 하고 뒹굴거리고 살아 '저질체력'이던 젊은 날보다는 건강한 50대를 맞이할 수는 있지만, 50대가 넘어서면 아무리 팔 굽혀 펴기를 매일 30번씩 하고 플랭크를 3분씩 해도 복근은 커녕 배가 땅기지도 않는 (놈의) 걸 정신력으로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평행우주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글자 그대로 '무한한' 가능성을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평행 우주.
가능성을 계산해서 미리 범죄를 막는다는 구상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 중 하나가 마지막에 탐 크루즈의 아들이 아직도 많은 가능한 미래 속에 살아있는 것처럼 묘사하며 그의 상실을 위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람이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는 건, 그 기억 안에서만이라도 다시 기회를 가지고 싶어서일 것'이라고, 풀리 쳐 수상작가 오션 브엉은 그의 책 <이 세상에서 우리는 잠시 눈부시게 아름답다>에서 말했다.
되짚어 들여다보면서 잘못’한’ 것은 되돌려놓고, 잘못’된’ 것은 고쳐놓을 기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후회’라고 부르는 것도 후회가 아니라 희망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그렇게 ‘배우고’ 나아질 수만 한다면 곱씹으면 뭐 하냐며 자꾸 잊고 덮는 것보다, (그리고 남더러도 자꾸 잊고 덮으라는 것보다) 후회하지 않을 일이 더 많아질 테니까.
평행우주에서 만나는 이 수많은 나는 아마도 의미 없음의 미학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 것이다.
산다는 것은, 모든 경우의 수의 불행과 모든 경우의 수의 행복 안에서, 그 많은 조합과 갈라짐과 멈춤과 돌아감과 지나감에서, 나는 오늘, 여기까지 왔고, 그렇게 또 한 갈래, 또 한 갈래 길을 만나도 그저 그렇게 뚜벅뚜벅 살아가는 법 밖에 없다는 것을, 때로는 실패를 하고, 심지어 그걸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애초에 이유가 있어서 넘어진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넘어진 것뿐이니까 그저 털고 일어나면 된 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대의 하나의 우주가 갈라져 나가 그대에게 행복의 길을 걷게 해 준다면, 나는 기꺼이 그대를 보내겠다.
누가 아는가, 그대 오늘 잠결에 한번 돌아누움으로 그 우주를 만날 수 있을지.
그러니 부디 행복하기를, 오늘이 이 글을 읽은 그대와 이 글을 쓴 내가 만나는 마지막일지라도.
부디 모두 아름다운 우주에서 살아가기를.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그래도, 어쩐지 제법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그 많은 우주에서 '살아있는' 모든 '나'는 오늘도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열심히 책을 읽고, 그리고 뭔가를 끊임없이 끄적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연필로, 볼펜으로, 만년필로, 랩탑으로, 아니면 아직도 어떻게든 이날까지 짊어지고 온 대학교 때 아버지 회사에서 버리는 것을 받아 두드리기 시작한 수동타자기로 (그때보다는 형편이 나아져서 리본을 다시 감아 흐릿하게 찍지 않고 새것으로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우주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 목적도 없이, 그러나 그저 넘치는 '잡생각'을 활자로, 문구로, 문장으로, 문단으로, 글로, 담아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