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철학, 소유가 아닌 가치관의 조율
결혼 초기, 우리는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다. 실질적 목표를 세우고 수입과 지출을 통제하면, 돈은 계획대로 모으면 되는 단순한 수치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돈은 숫자가 아니라 관계를 해석하는 언어라는 것을. 그 언어의 의미를 공유하지 못하면,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관계에는 금이 간다. 그리고 때때로, 흔들리는 가정경제는 단순한 재정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적어도 나에게 돈은, 얼마나 버느냐보다 무엇을 믿고 쓰느냐가 더 중요했다.
결혼 초반, 우리의 ‘돈의 언어’는 달랐고, 그 차이는 단순한 소비 패턴의 충돌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나에게 미용실, 택시, 좋은 식사 같은 지출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회복의 리추얼이자, 바쁜 일상 속 나를 인간으로 재구성하는 의식과 같았다. 잠시 일탈하여 얻는 여유는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한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그는 저축할수록 안정을 느꼈고, 언제나 불필요한 소비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냈다.
첫 미용실 비용 논쟁에서, 남편의 놀라움은 “그게 왜 그렇게 비싸?”라는 단순한 질문의 형태였지만, 나는 그 속에서 “왜 나는 이해받지 못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읽어냈다.
어쩌면 그에게 내 소비는 낭비였지만, 나에게는 살아 있는 현재를 유지하기 위한 회복의 에너지였다. 그의 관점에서 돈은 미래를 위해 절제해야 하는 것이었고, 나의 관점에서는 그 절제가 현재를 질식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신혼 초에 우리는 저축과 소비의 비율을 논했다. 고정 지출을 제외하고 저축과 소비의 이상적인 비율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내 질문에, 남편은 저축 60, 소비 40을, (이것도 줄인 것 같았다) 나는 50:50을 주장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관한 철학적 선택이었다.
남편은 불확실한 내일에 대비하고, 위기 앞에서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오늘을 절제하는 삶을 지향했다. 어쩌면 그에게 안정된 미래라는 것은 가족을 보호하는 사랑의 언어였을지 모른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누리며 작은 행복들을 쌓는 것 속에서 사랑을 느꼈다. 그는 ‘불확실성’을 관리했고, 나는 ‘현재성’을 확장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지속 가능한 행복이라는 같은 목표를 말하고 있었다. 가는 길이 달랐을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다를 뿐이었다.
우리는 이 차이를 논쟁의 장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언어를 천천히 번역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지금 여행을 가는 게 가치 있는 선택일까?”
그 지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소비하고자 하는 가치는 어떤 것들인지, 이런 대화들을 주고받으며, 부부사이에 이해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논쟁이 아닌 대화로 조율한다는 것. 물론 이 원칙은 단순히 돈 문제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 모든 갈등에 적용되는 우리 관계의 운영 철학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남편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나를 위한 소비의 횟수를 조절할 수 있었다. 반대로 나의 소비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회복의 에너지임을 남편이 이해했을 때, 그는 가족 여행과 외식을 낭비가 아닌 관계에 대한 시간 투자로 바라보게 되었다.
결혼 14년 차인 지금,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남편보다 더 보수적인 소비관을 갖게 되었다. 이민과 외벌이, 육아를 거치며 경제적 안정의 필요성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반면 남편은 현재의 경험에 더 관대해졌다. “아이들이 자라면 이런 시간 다시 못 와.” 그는 과거의 나처럼 현재를 중요시하게 되었다.
사람은 설득으로 변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살아내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스며들어 간다. 그의 언어가 내 안에, 나의 언어가 그의 세계 속으로 흘러들었다. 결혼은 결국 서로의 논리를 이기려는 싸움이 아니라, 두 세계가 닮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강점을 중심으로 경제적 역할을 새롭게 정리했다. 남편은 숫자와 투자에 강했고, 나는 생활 관리와 소비 감각에 강했다. 그래서 우리는 합의에 도달했다.
재테크는 남편이, 생활소비와 관리는 내가. 대신, 투자 방향은 우리 철학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것.
남편은 투자에 관심이 많았지만, 나는 돈의 윤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 부부에게 있어, 돈은 단순히 불리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지하며 살아가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우리는 가정용 ESG 원칙을 세웠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기업, 환경을 해치거나 노동을 착취하는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남편은 투자 전에 늘 내게 그 방향을 함께 검토하자고 제안한다. 나는 수익률보다 철학의 방향을 보고 의견을 제시하고, 남편은 내 의견을 존중한다.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아무리 전망이 좋아도 투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재무 전략이 아니라, 우리 부부의 가치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돈을 버는 방식이 곧 우리의 삶을 말해준다고 믿었기에, 우리는 수익보다 지속가능한 윤리를 선택해야 했다.
결혼은 함께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함께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결혼은 사랑의 제도이자, 돈의 언어를 함께 번역하는 철학적 실험이다.
사랑만으로는 결코 현실의 무게를 견딜 수 없고, 숫자로만 이루어진 시스템만으로는 삶이 숨 쉴 수 없다.
돈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라 믿는다. 미래를 믿는가, 현재를 믿는가.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서로의 답을 이해하고 함께 제3의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돈의 소비는 결국 가치에 대한 투자와 같다. 부부 사이의 경제적 M&A란 단순한 자산의 결합이 아니라, 가치관의 공명을 의미한다. 그 공명은 단기적 수익보다 오래 지속되는, 관계의 복리를 만들어낸다. 사랑이란 결국 이익의 합이 아니라, 서로의 가치가 진동하며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평형이 아닐까.
나에게 결혼이란, 경제가 아니라 철학으로 지속되는 가장 아름다운 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