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지키는 대화의 철학
결혼 14년 차,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종종 누군가에게 신기한 일로 비치곤 한다. 심지어 친정엄마도 늘 믿을 수 없다는 듯,
"ㅇ서방이 참고 사는 거겠지"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는 대답한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인데?"
우리는 성인군자도, 감정이 메마른 사람도 아니며,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참고 사는 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비결은 아주 단순하게 감정을 대하는 방식, 즉 말의 온도를 의식적으로 조절하고 훈련하는 데 있다. 좋은 관계는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과 성숙한 철학적 태도를 요구한다는 전제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우리는 싸울 뻔한 순간마다 침묵이나 폭발 대신 대화를 선택한다. 그 선택의 기저에는, 대화야말로 가장 고차원적인 사랑의 행위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초,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나는 종종 비난을 설명으로 위장했다.
“왜 나한테 미리 말하지 않았어?"라는 말은 남편의 행위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라,
"나는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내면의 두려움을 비틀어 표현한 공격이었다.
그런 감정 중심의 대화는 관계를 갉아먹는 독이었다.
나는 대화 중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네가 정말 말하고 싶은 건 뭐야?"라는 질문은 감정의 홍수 속에서 나를 건져 올리는 이성의 개입이었다. 어쩌면 내가 화난 것은 상대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으로 유발된 내 안의 비현실적인 기대나 상실감 때문임을 자각했다.
결혼생활 내내, 우리는 의식적으로 화를 내기보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훈련했다.
"그 말이 조금 서운했어"라고 나의 상태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감정은 폭발할 때보다 조용히 전달될 때 그 메시지가 더 명료하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라는 말 대신,
“나도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니까, 다음엔 같이 상의해 줬으면 해"라고 말하게 된 것은 수많은 연습의 결과였다.
결혼 초 우리에게 이런 연습이 가능했던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타올랐기 때문이다. 그 온도가 가장 뜨거울 때가 관계의 시스템을 만들기에 최적의 시기였던 것이다. 감정의 언어화는 싸움을 대화로 바꾸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었다.
넷째 임신 중 맞닥뜨린 코비드와 뉴질랜드 국가봉쇄는 우리 관계의 민낯을 드러내는 시련이었다.
아이들은 6주째 집에 갇혀 에너지가 넘쳤고, 나는 입덧과 피로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창밖도, 내 심신도 텅 비어 있었고, 집안일과 설거지는 끝이 없었다.
남편은 재택근무와 가끔의 출근 사이에서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겪었다. 저녁이 되어도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업무 메일이나 주식 시장을 들여다보았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만 있던 나에게 남편과의 대화는 유일한 성인과의 소통이자 존재의 확인이었다. 남편의 무관심 속에 나는 결국 감정을 터뜨렸다.
“이제 우리의 대화가 더 이상 의미가 없구나."
나는 소통에 목마른 나의 외로움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울면서 토로했다.
그때, 남편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미안해.”라고 답했다.
다행히도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대신, 그 순간에 서로의 지친 시간 속 외로움을 확인했다. 폭발 직전에 멈춰 서서 진짜 문제가 대화의 부재였던 걸 확인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것. 이것이 우리 부부가 언성을 높이지 않는 결정적인 대화의 변곡점이었다. 싸움은 서로를 이기려는 행위이지만, 대화는 서로의 외로움을 확인하고 공감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사건 이후, 남편은 정기적인 대화의 밤을 제안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핸드폰을 내려놓고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논쟁이 아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경제, 정치, 육아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주제를 정해 대화했다.
남편의 주식 투자에 대해, 나의 와인 지식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관심사에 깊이 스며들었다. 이 시간은 단순한 취미 공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의 열정을 들여다보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언어를 통해 서로의 가치관과 사고 구조를 이해하면, 결국 상대의 존재 전체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다.
대화는 서로의 세계에 다리를 놓는 행위이며, 그 다리를 건너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 또한 이루어진다.
이러한 대화는 감정의 일치가 아닌, 가치관의 공명을 이끌어냈다.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닮아가며, 우리는 ‘나' 그리고 '너’에서 ‘우리’라는 새로운 연합체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감정의 표현 방식은 반복될수록 관계의 모양을 결정한다. 싸움도 습관이고, 싸우지 않는 것도 습관이다.
감정은 훈련된다. 화를 낼수록 화는 더 커지고, 참지 못하는 회로는 점점 짧아진다. 그러나 대화를 선택하는 순간, 그 감정의 흐름은 다른 방향으로 우회된다.
싸움이 습관이 되듯, 대화도 습관이 된다. 그리고 그 습관은 점점 더 견고한 평화를 만들어낸다.
감정을 다루는 태도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관계를 만들어가는 철학이다. 부부가 어떤 방식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관계는 완전히 재편될 수 있다.
우리가 싸우지 않는 이유는 항상 서로가 옳아서가 아니라, 대화의 목적이 이기기보다 이해하기에 있기 때문이다. 대화 중 논리보다 상대의 감정의 결이 먼저 보일 때, 우리는 판단을 멈추고 이해를 하려고 한다. 이해가 자리 잡으면, 상대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아도 관계는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진정한 대화란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 상태와 가치관을 확인하고,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를 이해하려는 행위이다.
결혼 14년, 싸움이 없는 결혼이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이해하려는 노력이 멈추지 않는 관계를 의미한다. 평화는 침묵에서 오지 않는다. 평화는 들으려는 인내와 말하려는 용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사랑은 대단한 기적이나 격렬한 감정이 아니다. 피곤하고 귀찮을 때조차도 말을 멈추지 않으려는, 그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 굳건한 의지다. 그리고 그 의지는, 매 순간의 훈련과 성찰을 통해서만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