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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결혼예찬 06화

5화. 아빠는 엄마 짝꿍이야

가족의 중심을 지키는 호흡의 철학

by 아타마리에

아이가 가르쳐 준 부부의 시간

작년, 가족 여행으로 떠난 휴양지에서 남편과 나는 풀 바에 앉아 칵테일을 마셨다. 막내는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잠시 얻은 단둘만의 시간이었다. 그때 큰아이가 헐레벌떡 달려와 우리가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막았다.

“엄마! 베이비시터가 아기랑 수영장에서 놀고 있어요. 엄마 아빠가 저쪽으로 가면 아기가 엄마한테 올 거예요. 그럼 둘만의 시간은 끝이에요. 그러니까 절대 가지 마세요!”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반복해서 말하고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큰아이는 뉴질랜드 법적으로 만 열네 살이 되면 동생들을 집에 두고 나가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가 14살 되면 동생들 다 봐줄 테니까, 엄마 아빠 둘이 데이트 많이 하세요"라고 말해 나에게 감동을 준다.


“엄마의 짝꿍은 아빠고, 너희와의 시간이 소중한 것처럼 우리 둘의 시간도 존중해 줘야 해.”

사랑은 말이 아니라, 보여주는 관계의 풍경으로 아이들에게 스며든다.

가족의 중심은 언제나 부부가 같은 호흡을 맞추는 일상에서 시작된다. 결혼은 감정의 충동이 아니라, 서약한 서로의 옆자리를 지키기 위한 두 사람의 꾸준한 노력의 축적이다.

이 꾸준함이 사랑의 불씨를 살리고, 가정이라는 문명을 만드는 빌딩 블록이 된다.




침대라는 성소

결혼 초기부터 우리에게는 무언의 원칙이 하나 있다.

어떤 날에도,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잠든다는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배우자에게 소홀해진다거나, 외부적인 일이나 자식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서로에게는 남은 여유가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하루의 끝에서 나란히 눕는다는 건 습관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의식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지만, 감정이 돌아와 머무를 자리를 만들어 준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유축과 육아로 지친 몸으로, 잠에서 깬 아이를 눕혀 재우고 다시 우리의 침대로 돌아올 때마다, ‘나의 자리는 이곳, 서로의 옆’이라는 꾸준한 인식이 남편의 따뜻한 체온을 통해 매일 확인되었다.


잠이라는 것은 그냥 습관과는 또 달랐다.

말이 사라지는 시간인 어두운 밤에도 관계의 진짜 거리는 여전히 드러난다. 같은 침대에 누워, 같은 시간에 잠들어 있는 그 감각. 그것이 우리 사랑의 가장 근본적인 호흡이었다.




사랑의 불씨에 장작을 던지기

같은 잠자리를 공유하는 습관 외에도, 우리는 부부의 중심축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생활의 질서를 만들어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모든 부부는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사랑은 구조와 질서로 유지된다.

감정은 난롯불과 같아서, 언제나 뜨겁게 타오르지 않으며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하면 식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의 지속력을 위해, 계속 장작을 넣어주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며 둘만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들을 맡길 수 없는 상황 상, 우리의 데이트는 연중행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나 유치원에 가 있는 낮 시간에 남편이 휴가를 내고 종종 함께 데이트를 하는 날을 정했다. 이런 소소한 데이트는 그저 휴식을 취하는 날이 아니라, 연애 세포를 주기적으로 깨우는 의식이기도 하다. 부모의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다시 남편과 아내로, 연인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또한 주말 저녁마다 아이들을 재운 뒤, 와인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우리 부부의 중요한 일상의 호흡 중 하나이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와 역할 속에 묻힌 감정들을 다시 꺼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직장에서의 불만, 학업의 고민, 가정 내의 현실적인 문제들까지 깊이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가장 솔직한 친구이자 조언자가 된다. 깊어가는 밤,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관계는 다시 환기되고, 관심과 존중이라는 산소가 공급된다. 부부에게는 자신들만의 주기적인 생활 박자로 돌아오는 통로가 필요하다.


매일 아침, 각자의 회사로, 학교로, 유치원으로 나가기 전, 우리는 뽀뽀로 인사를 대신한다. 일상의 작은 스킨십은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수평적 관계를 복원시키는 일이다.


우리 부부의 호흡은 매일 다시 조율된다.

우리가 둘만의 시간과 공간을 지키는 이유는 거창한 게 아니다. 부모가 서로에게 집중할 때, 집 전체가 평화롭고, 둘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을 때, 아이들은 더 안정적이다.




사랑은 호흡 위에 지어진다

14년의 결혼생활을 하며 알게 되었다. 가정이란 결국 작은 문명이며, 이 문명을 유지하는 것은 감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간을 견디고, 반복을 의식으로 바꾸며, 낡아갈 때마다 다시 보수하는 생활의 철학, 서약한 옆자리를 지키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불꽃이 언제나 뜨겁게 타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습관처럼 만들어진 호흡이 우리를 다시 불러 세울 것이다. 다투거나 피곤한 날에도, 우리는 같은 침대에 누워 서로의 존재가 같은 시간에 잠들어 있음을 확인한다.


결혼이란, 그래서 같은 시간에 잠들고 깨어나는 호흡을 맞추는 것과 같다. 의식적인 반복이 감정의 불씨를 살려내고, 가정이라는 견고한 시스템의 생활 질서를 만들어 낸다.


새벽 두 시. 공부를 마치고 나는 어둠 속으로 돌아간다. 이미 잠든 남편이 있는 침대로 돌아가, 그의 따뜻한 발에 내 발을 맞댄다.

‘돌아와야 할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노력을 완성한다.


“엄마의 짝꿍은 아빠야.”

한 문장이 우리 가족의 철학을 다 설명한다.

사랑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함께 지켜낸 생활의 질서 위에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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