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온기로 메우는 연금술
부부 사이에는 말이나 글로 전부 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우리의 마음을 나누는 방식은 비언어적 소통의 섬세한 층위를 통과한다. 스킨십처럼 직접적인 접촉뿐 아니라, 가장 쉽고 원초적인 방식인 음식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결혼, 함께 산다는 것은 일상 속에서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부부의 밥상은 단순한 생존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허기가 아닌 결핍의 마음을 온기로 채우는 교감의 장이며, 우리 관계를 지탱하는 비가시적인 힘이었다.
2018년, 남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다쳐 한 달이 넘게 회사에 나가지 못하고 깊은 우울 속에서 허우적대던 때가 있었다. 그의 우울은 깎지 않은 까슬한 턱수염처럼 나날이 부스스해져 갔다.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그의 회복 과정 앞에서, 말은 때때로 무력하게 느껴졌다. 한마디 위로가 되려 상처가 될까 주저했고, 설령 겨우 꺼내는 위로의 말도 매일 나누기는 어려웠다.
나는 말 대신 매일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서툰 솜씨로 그가 가장 좋아했던 굴 국밥을 처음 끓여내고, 여러 가지 메뉴들로 밥상을 채웠다. 그의 생일날엔, 부들거리는 손으로 처음 사본 랍스터를 올렸다. 그것들은 허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위로의 말과 같은 것이자, 기분을 전환하고 깊은 곳의 우울을 덜어내고자 함이었다. 상황은 비극적이었지만, 밥상에 앉으면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인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도록.
또한 우리는 매일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오늘은 커피빈이 바뀌었네.” 고통과 우울감에 집중하기보다, 일상이 주는 작은 행복에 귀 기울이며 결핍된 마음을 온기로 채워갔다. 음식은 위로가 되어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마음의 물질이었고,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충족을 가져다주며, 마음의 회복을 조금씩 만들어냈다.
셋째를 낳을 때였다. 나는 가정 출산을 준비했고, 산후조리 문화가 없는 뉴질랜드에서 친정엄마가 오시기까지의 공백은 불안했다. 가진통은 37주가 시작하자마자 매일 나를 괴롭혔다. 뭐든 계획적인 나에게 예상하지 못하는 일(가령 출산 같은)을 맞이하는 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었다. 게다가 첫째와 둘째 아이까지 케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날이 부담감이 늘어갔다.
“곧 아이가 나오면 어쩌지?”
어느 날 새벽, 아이를 재우고 주방으로 내려왔을 때,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코를 찔렀다. 남편이 엄청난 양의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는 미역국을 식혀 1인분씩 소분해 얼려두며 말했다.
“혹시 아기가 먼저 나와도, 장모님 오실 때까지 자기가 먹을 양은 충분해. 걱정하지 마. 오늘 당장 나와도 우리 가족 다 먹을 수 있고.”
요리를 한다는 것에는 돌봄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그날 남편의 요리는 마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과 걱정을 음식을 통한 사랑으로 변환하는 연금술 그 자체였다. 나는 그 미역국을 해동해 먹을 때마다 남편의 진심을 받았다. 음식은 나에게 영양소를 보충하는 의미만이 아닌 ‘걱정하지 마, 내가 너를 돌보고 있어’라는 남편의 비언어적 서약이 되어 내 몸을 흐르고 마음을 채웠다.
종종 연애 시절 자주 먹던 음식 이야기를 나눈다. 이민을 오고 같은 식당에 찾아가 먹을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종종 그때를 떠올리며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 차가운 밤을 녹이던 동대문 떡볶이와 어묵 국물, 처음 데이트 한 날, 맛집 줄이 너무 길어서 우연히 들어간 찜닭, 생일날 먹었던 프렌치 음식….
고된 육아와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와인 한 잔과 함께 연애 시절 즐겨 먹던 떡볶이를 먹다 보면 추억과 향수가 소생한다. 때론 음식은 우리 부부에게 뜨거웠던 연애의 감정선을 현재로 소환하는 타임머신이 된다. 달콤함이나 매콤함은 지친 몸에 작은 쾌락을 주며, 잠시 연인으로 돌아가게 하는 사랑의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이 시간은 부부가 서로를 연인이자 가족으로 다시 인식하는 미식적 재회의 순간이다.
우리는 매일의 밥상을 통해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갱신한다. 저녁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 동안 있었던 감사한 일을 나누는 시간이다. 음식은 대화의 촉매제가 된다.
막내는 유치원에서 있던 일을 조잘대기도 하고, 큰아이는 학교 친구들과 축구한 이야기를, 둘째는 책에서 읽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셋째는 친구 관계에 대해 토로한다.
이 작은 밥상 위에서 각자의 삶이 공유될 때, 밥상은 소통의 공간이자, 서로를 응원하고 조언하며 공동체로서의 화합을 다지는 매개체가 된다. 이 교감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세상 속에서 겪은 고난을 따뜻하게 녹여낸다. 밥상머리의 대화는 가족의 정서적 단열재인 셈이다.
한때, 우리 부부에게 밥상은 매일의 현실을 마주할 힘을 얻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것은 소통이 단절된 순간에도, 서로를 돌보고 있다는 신뢰의 증명이었다.
사랑을 채우는 밥상의 힘은 화려함에 있지 않다.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서로의 결핍을 읽고 온기를 나누는 행위에 있다. 우리는 식탁에서 삶의 비극을 잠시 내려놓고, 밥 한 술, 커피 한 모금, 혹은 떡볶이 한 조각에서 일상의 행복을 갱신하는 방법을 배웠다.
결혼은 때로 말로 할 수 없는 고난의 순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때,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는 것은 웅장한 서약이나 수려한 위로가 아닐 수 있다. 그 대신, 서툰 미역국과 소박한 분식, 그리고 곁을 지키는 따뜻한 커피 한 잔처럼, 묵묵히 나에게 전달되는 진실한 사랑의 물질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밥상에 앉는다. 말 대신, 음식으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