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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결혼예찬 08화

7화. 파트너에서 진짜 가족이 되는 순간

가족이라는 이름의 운명공동체

by 아타마리에

선택을 넘어선 것

파트너는 끊임없는 선택이다.

불타오르는 마음에 대한 약속처럼, 우리는 사랑하기로, 함께하기로, 그리고 매 순간 이 관계를 지속하기로 결정한다. 이 관계를 언제든 유지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때로 가족이라는 이름은 선택의 자유를 넘어선다. 함께 산을 넘고 진흙탕을 구르다 보면, 관계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갈 것이다. 서로에게 떠날 수 없는 존재, 때로는 함께 견딜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두 존재가 단단히 얽혀버린 운명 공동체로 진화해 가는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도 파트너에서 가족이 된 순간이 있었다.




생후 9일, 패혈증과의 사투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아팠다.

생후 9일. 패혈증이 온몸에 퍼져 어깨에 패혈성 관절염이 생겼다. 하얗게 질려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신생아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의사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응급 수술을 예고했다. 아이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순간이었다. 그 통보를 받은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병실 바닥에 엉엉 기어가며 절망감에 울부짖었다. 모든 이성이 해체되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니까. 남편은 놀랍게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우리 큰아이도 있는데 버텨야 해. “


그 한마디가 나를 붙들었다. 나는 큰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이고, 남편과 함께 파도가 배를 집어삼키는 순간에도 갑판에 서서 우리 가족이라는 배를 지켜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선택으로 묶인 파트너가 아니라, 생존의 의무로 묶인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그 절망의 극한에서, 가족은 계약을 넘어선 윤리로 완성되었다.




각자의 전선에서

감사하게도, 둘째의 수술은 무사히 끝나고, 아이는 한 달 반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신생아실이 없는 뉴질랜드의 병원 구조상, 나는 아동병동에 보호자로 입원하여 아이를 직접 케어해야 했다. 모유도, 분유도, 기저귀도, 우는 아이도 엄마가 직접 챙겨야 했기에 산후조리 같은 건 없었다.


아기 침대와 보호자용 싱글침대가 덩그러니 있던 병실이 내 생활공간이 되었다. 좀비처럼 일어나 병실 한켠에 앉아 밤새 유축하고, 아픈 아기를 안고 돌보는 것. 그게 내 산후 한 달 반이었다.

아이는 밤낮없이 울었고, 나도 울었다.


남편은 밖에서 홀로 출퇴근하며 큰아이를 돌봤다. 매일 출근 전후, 병원에 들러 나와 아기를 보고 갔다. 피곤한 얼굴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나는 느꼈다. 아, 이 사람도 한계에 와 있구나.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직접 도울 수 없었다. 하지만 함께, 동시에 이 무게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각자의 전선에서 싸우며, 우리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시절, 아동병동 간호사들이 내 가족이었다. 지긋한 나이의 할머니 간호사 한 분은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마다 자지러지게 우는 우리 아기를 대신 안아주러 오셨다. 내가 유축하는 동안 본인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젊은 간호사들은 주말이 되면 반나절 아이를 봐줄 테니 병원 앞이라도 나가서 큰아이와 데이트하고 오라 권했다. 덕분에 병원 근처 동물원에도 잠시 다녀올 수 있었다.


출산 후 엉망이 된 나, 작은 몸으로 수술과 치료를 견뎌야 했던 둘째, 홀로 출퇴근하며 큰아이를 돌봐야 했던 남편,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 엄마의 빈자리를 견뎌야 했던 17개월 큰아이.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견뎠다. 우리는 한 배를 탄 가족이었다.




방 한 칸짜리여도 좋으니

어느 날 밤, 나는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방 한 칸짜리여도 좋으니까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있을 수 있는 집에 가고 싶어. 이렇게 지내니까 좋은 집, 좋은 물건이 무슨 소용이야. 그냥 다 같이 아프지 않고 함께 있으면… 그게 천국이지.”

남편은 조용히 말했다.

“곧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조금만 더 버티자.”

그날의 마음을 나는 자주 떠올린다.


살다 보니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많은 것을 향한 욕심이 끝없이 밀려온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들에 불만이 생기려 할 때, 난 의식적으로 그때를 떠올린다.

아픈 아이와 함께 병실에 있던 그 밤.

언제든 가족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진짜 내 집이고 진짜 내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국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였다.




선택 불가능함이 주는 자유

그 한 달 반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견뎠다. 병실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서로를 직접 돕지는 못했지만, 우리 둘은 같은 무게를 나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우리는 “함께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관계를 자유롭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사람과 계속 있어야 할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더 잘 함께 살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더 이상 떠날 가능성을 계산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방 한 칸짜리여도 좋으니 다 같이 있고 싶다던 그날의 마음. 두려움을 맞서 함께 손을 잡는 연대. 그게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건강하게, 함께 숨 쉬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 결혼은 그렇게 우리를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운명 공동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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