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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결혼예찬 09화

8화. 평형의 미학

변화 속에서도 사랑은 우리를 다시 균형으로 이끌어낸다

by 아타마리에

평형, 관계를 관통하는 냉정하고 아름다운 진리

화학을 전공한 나는 평형(Equilibrium)이라는 개념을 사랑한다.

그것은 단순히 과학의 언어에 머물지 않고, 삶과 관계를 관통하는 근원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화학반응식 속의 가역 화살표 위에 놓인, 그 냉정하면서도 완벽히 조율된 균형. 농도와 속도가 정확히 일치하여 겉으로는 정지한 듯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정반응과 역반응이 쉼 없이 교차하는 동적 상태. 이 미학적 균형이야말로 인간관계, 특히 부부라는 결합체를 지탱시키는 기제이지 않을까.


모든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평형점을 찾아 나선다. 이 평형은 결코 50:50이라는 산술적 비율로 정의되지 않는다. 물론 어느 한쪽의 경제적 기여가 압도적으로 크거나, 다른 한쪽의 정서적·육체적 노동이 과중해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언뜻 불균형처럼 보이는 관계 안에는 수백 개의 미세하고 비가시적인 조율 장치들이 작동하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힘, 즉 사랑과 헌신이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를 상쇄하며 진정한 균형을 유지시킨다.




평형의 이동과 붕괴

우리는 맞벌이로 시작했다.

각자의 역할과 기여가 명료했던 그때의 평형은 단순하고 안정적이었다. 연봉도 반, 가사도 반씩 기여하면 되었고, 아이도 없던 신혼의 시간에는 육아 부담조차 없었다. 우리의 평형은 그렇게 정 가운데 즈음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삶의 조건이 변하면서 이 평형은 필연적인 이동을 겪는다.

화학에서 온도·압력·농도의 변화가 평형점을 바꾸듯, 이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변수는 우리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남편의 외벌이와 나의 전업 육아는 겉보기에 100:0의 불균형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제로섬의 계산이 아니었다. 남편이 사회라는 전선에서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동안, 나는 가정이라는 요새에서 아이들과 정서적 기반을 지켜냈다. 서로 다른 전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수행했지만, 그 힘의 벡터는 가족의 안녕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진정한 평형이었다.


삶은 때로 그 평형을 파괴 직전까지 몰고 간다.

연이은 출산과 아이의 병, 그리고 아버지의 상실은 나를 극심한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때 우리 부부의 관계는 한쪽으로만 치닫는 비가역적 붕괴의 문턱에 서 있었다.

내가 너무 깊이 침잠하여, 남편 혼자의 힘으로는 더 이상 평형추를 되돌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의 순간이었다. 그때 그의 헌신은 무너진 관계의 반응을 되살린 촉매와 같은 것이었다.

남편의 멈추지 않았던 노력은 내 안의 반응을 다시 일으켰고, 관계는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채 새로운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 붕괴 직전의 경험은, 부부라는 결합체의 탄력성과 회복력을 증명해 낸 순간이었다.




새로운 동적 평형

넷째 아이의 탄생은 가족의 숫자의 증가로만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무너졌던 평형을 재건하겠다는, 우리 부부의 삶을 향한 용기 있는 선언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탐색이었다.

10년의 전업 육아를 마치고 내가 학업과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우리는 또 한 번 평형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네 아이와 남편의 일, 그리고 나의 새로운 시작이 얽힌 지금, 균형을 잡는 일은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일이며, 옛날의 50:50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여섯 개의 지지대, 여섯 식구라는 하나의 시스템이 있다.

예전에는 남편과 나, 둘이서 모든 하중을 감당했지만, 이제는 아이들 또한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족을 지탱한다. 동생을 돌보고, 가사를 거들며, 웃음으로 가족의 피로를 덜어준다.

이제 우리 부부의 평형은 가족의 평형으로 확장되었다. 가족이라는 시스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동적 평형 상태를 지향하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사랑이라는 영원한 평형추

궁극적으로, 결혼에서의 평형은 고정된 정지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겉보기의 고요함 속에 숨겨진, 끊임없는 노력과 조율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은 본디 미완의 존재이며, 개인의 인생만으로 완벽한 평형을 이루기는 어렵다.


14년의 세월 동안 우리의 평형점은 무수히 이동했고, 수많은 변수 앞에서 위태로웠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매번 새로운 균형을 찾아낼 수 있었던 힘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서로의 평형추가 되어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기우는 쪽을 받쳐주며 균형을 맞추는 것. 그것이 바로 결혼의 본질이다. 사랑과 신뢰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끊임없이 반응하게 만들며, 포기하지 않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평형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변하는 한, 평형점 또한 끊임없이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움직임 속에서, 사랑을 촉매제로 삼아 또다시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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