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진심
아빠가 나에게 준 사랑은 특별했다. 아빠는 늘 책을 선물해 주실 때마다 첫 장에 작은 메모를 남겨 주셨다. 어느 순간부터 바빠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아침마다 내 머리맡 알람시계 밑에는 용돈과 함께 아빠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답장을 하지 못할 만큼 많은 편지가 쌓였지만, 그때 나는 아빠의 마음을 당연하게만 여겼던 것 같다.
중학교 밸런타인데이에 학교로 초콜릿을 보내준 적도 있다. 처음엔 좋았지만, 2년 연속 초콜릿이 오자 창피해졌고, 결국 아빠와 크게 다퉜다. 그 후로 초콜릿은 학교가 아닌 내 방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사춘기 시절, 아빠는 나와 멀어지지 않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농구팀, 음악, 연극 등에 부단히 관심을 기울였다. 생각해 보면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아빠의 노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가 보여준 그 무한한 사랑을 그대로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잘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성적은 아빠를 기쁘게 했고, 어느새 난 사랑스러운 딸에서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으니까. 그러던 언제부터인지 아빠의 사랑이 마치 무한한 기대처럼 느껴졌다. 나의 노력이 아빠의 사랑에 미치지 못할까 봐 점점 지쳐갔고, 나는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니란 자괴감에 아빠의 마음을 온전히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어느새 내 마음은 아빠의 마음과 다르게, 부담감으로 가득 차버렸다.
사랑과 기대, 부담과 책임… 우리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서로 엇갈리며 마음을 주고받았나 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마음을 덮어두고 살았지만, 그럴수록 오해는 더 깊어졌다. 결국, 우리의 그토록 특별했던 부녀 사이가 어느새 평범한 거리감 속에 아주 조금씩 멀어져 갔다. 아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한 걸음씩 물러선 건 결국 나였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자꾸 그 시절을 회고하게 되는 건 어쩌면 늦었지만 화해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아빠와의 갈등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마음과도 화해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내게 남긴 수많은 편지가 지금 와서 보면 묵직한 사랑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사랑의 무게와 깊이를 이제야 깨닫는 것은 세월의 힘이겠지. 나는 그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사랑이 나를 지탱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사랑은 기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곁을 지켜주던 아빠의 진심이었다. 어쩌면 돌아가신 후에야 그 사랑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그 기억 속에서 다시 한번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 그런 바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