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조기 양막 파수로 태어난 첫아이를 제외하고, 나는 세 아이를 무통이나 유도 같은 의료 개입 없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견디며 낳았다. 그중 셋째와 넷째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맞이했다. (가정 출산 이야기는 언젠가 따로 써볼까 한다.) 나는 고통에 비교적 둔감한 사람이라 생각해 왔지만, 진통을 남편에게 설명할 때 “달리는 기차가 내 골반을 짓밟고 지나가는 느낌”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특히 진통의 정점에서, 아이와 만나는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의식이 아득해지면서 ‘내가 살아서 아기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그 모든 고통은 마치 증발하듯 사라졌다. 출산의 고통은 한순간에 잊히고, 세월이 흐르며 육아의 나날 속에서 그날의 기억은 더욱 흐릿해졌다. 이렇게 네 번의 출산을 통해 새로운 생명과 세상을 마주해 온 경험은, 결국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쉽게 잊는지, 망각이라는 능력이 얼마나 깊은 본능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준다.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우리는 본능적으로 망각한다. 망각은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그렇게 과거를 뒤로하고 미래를 향해 한 발을 내딛는다. 삶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듯하지만, 우리는 매번 다른 실수를 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망각은 우리가 다시 삶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망각은 희망의 첫걸음이다.
삶에서 고통과 기쁨은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우리는 그 고통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매번 새롭게 삶과 맞서고, 아픔 속에서도 사랑을 통해 세상에 또 한 번 마음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