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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타마리에 Oct 29. 2024

밥상 위에 놓인 마음

할머니가 전하는 사랑의 방식

스무 살 중반, 한국에서 일해보겠다고 뉴질랜드에서 혼자 비행기를 타고 건너와, 홀로 살고 계시던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25살이었지만 막내딸의 딸이라 그런지 할머니 눈에는 내가 아직 아기로 보였나 보다. 할머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나를 위해 아침밥을 지으셨다. “아침은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 테니, 일어나지 마세요” 하고 몇 번을 말해도 할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반찬은 언제나 할머니의 사랑만큼 넘쳐났다. 따뜻한 국에, 가지무침, 콩자반, 두부조림과 각종 나물들… 지금은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의 따뜻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밥을 다 먹으면 간식까지 챙겨주셨다. 어느 날은 옥수수, 고구마와 김치, 또 어떤 날엔 빵과 요구르트를 내놓으셨다. 스물다섯 손녀가 한창 성장할 나이라 생각하셨는지, 할머니의 밥상은 언제나 풍성했다. 하지만 나는 외모를 신경 쓸 나이라 그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배가 부르고 소화가 안 된다는 핑계로 음식을 자주 남기곤 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늘 식사를 준비하시던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기다린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할머니가 검은 봉지를 들고 급히 돌아오셨다. 그것은 그날 할머니의 밥상을 대신할 내 저녁식사였다. 할머니는 주스를 함께 내어주시며 말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할미 밥 안 좋아하고 이런 걸 더 좋아한다며. 너 주려고 역전까지 나가서 사 왔어. 할머니가 늙은이 입맛에나 맞는 거 매일 해주니 네가 잘 안 먹은 것 같아서 “


은박지에 둘둘 말려있던 건 커다란 닭꼬치 네 개였다. 목이 메어왔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닭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할머니, 할머니 밥이 더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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