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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빈 Mar 17. 2022

방구석 일본어 14 : 済みません(스미마셍)

'끝'이 없는 진정한 사과






너무 미안하면, 너무 고맙기도 한 거야



발음이 쉽고, 간단한 일본어이기 때문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로 잘 알려진 'すみません(스미마셍)'. 매일 생각 없이 타이핑하던 사과 표현은 끝을 모르고 흐르는 물과 같은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사실 이 표면은 히라가나로 구성된 순수한 일본어라고 알고 있었지, 한자 済(건넬 제) 자가 쓰인다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사과 표현으로 申し訳ない(모우시와케 나이 / 드릴 말씀이 없다)의 비중이 높아서 인지의 영역 밖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발견에서 '일본어 탐구자'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단순히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보다 말의 어원이나 깊이를 알고 나면, 처음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의 의도에 따라 '제대로'사용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느껴지고 오래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저장됩니다.


본격적으로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 한자사전에 나와있는 済(건넬 제)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濟/済(건넬 제) : 비용을 決済(결제)하다.

1. 건너다

2. 돕다

3. 도움이 되다


한편, 일본어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済(음독 : さい/사이, 훈독 : すます・すむ/ 스마스・스무)  

1. 일을 성취시키다, 이루어지다, 하다

2. 다되다, 완성되다, 끝나다, 마치다

3. 물을 건너다, 건네다


'済む(すむ/스무)'가 미안합니다(済みません/스미마셍)의 원형입니다. 부정형인 ~ません 이 붙으니 위에 적어둔 일본어 활용을 예로 들어 부정 표현으로 바꾸어보겠습니다. 


1. 일이 성취되지 못하다, 이루어지지 않다, 하지 않다

2. 다 되지 않다, 완성되지 못하다, 끝나지 않다, 마치치 못하다



무엇을 끝내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이 다 이루어지지 못한 것일까? 


맹자는 본인이 주장한 사단설 중에서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리켜 '羞惡之心(수오지심)'이라 하였습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제각각이라고 하여도, '대화'하면 서로의 차이가 메워지는 아직은 인간적인 세상에 살고 계셨나 생각해봅니다. 대화의 창을 닫고, 내가 알고 말하는 것만이 정의라고 외치는 요새 세상을 돌아보게 되네요.


済みません(스미마셍)은 단순한 사과의 표현이 아닙니다. 어떠한 감정이 끝을 모르고 계속 이어진다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말이 생겨났을 당시의 목적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요? 감사의 마음도, 미안한 마음도 상대에게 가 닿고 나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요. 


'이제 되었다'라고 상대방이 멈춰준다고 하여도 마음은 선 긋는 것처럼 간단하게 끊기지 않아요. 잊었나 싶다가도 어느 날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내가 모른 척하고 있는 동안에도 불편한(때로는 고마웠던) 기억과 감정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구나' 느끼게 됩니다. 이 말은, 주기적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게 하는 인간의 됨됨이를 잘 이해하는 누군가가 만들어둔 말이었을 거예요. 분명합니다.


오늘이 오기 전의 나와, 오늘 새로운 발견을 한 후의 나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렇게 선언하고도 내일 아무렇지도 않게 '스미마셍, 스미마셍~' 할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깊은 말의 뜻을 발견한 오늘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미안하고 감사한 모든 일에, 진심을 담아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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