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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빈 Mar 20. 2022

방구석 일본어 15 : 役に立つ(도움이 되다)

일하고 또 잘 쉬어야 하는 이유






시작부터 끝까지 한 주기를 돌아보았을 때,
가장 조바심이 많은 구간은 어디일까요? 



이제 막 시작선을 통과하고 달린 지 얼마 안 지난 그 구간에서 가장 조바심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건강'이나 '취미'보다는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앞에 두고 달렸던 일이 많아서인지, 자꾸만 손목에 감긴 시계를 흘겨보며 가쁜 숨을 내뱉었던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지금 직장으로 이직이 결정된 후, 첫 출근날에 당황했던 기억도 떠올라요. 입사 전 연말에는 다니던 전 퇴사에서 벗어났다는 기쁨과, 2주 남짓의 휴가가 겨울 아침 이불속처럼 달콤했는데, 새해 첫 출근날이 되어서는 기합이 바짝 들어가서 아직 아무도 출근 안 한 사무실 문 앞에서 얼마를 뚝딱대고 서있었던지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기억이 없는데, 곧 남직원 한 분이 출근하셔서 무사히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면식이 있는 직원분이 출근하셔서 챙겨주시기 전까지 조용히 텅 빈 책상 앞에 앉아있을 작정이었는데, 따듯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났고 마침 사무실에 놓여있는 커피 머신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검고 묵직해 보이는 바디를 가진 커피머신은, 세 가지 옵션 중에 하나를 골라 내려주는 커피 양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종이컵에 마시려는데 에스프레소는 아니라며 눌렀던 가운데 버튼은 큰 실패였고, 한참 동안 컵이 넘치게 흘러내리는 커피를 보면서 식은땀이 났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누구나 시작은 서툴고 마음처럼 순조롭지 못한 법인데, 조바심 낼 것 없다는 말은 효과가 없는 약이나 이젠 지긋지긋한 잔소리처럼 귀가 따갑게 날아들었다가 오자마자 튕겨져 나갑니다. 회사 일도 개인사도 매사 적극적으로 부딪히며 경험을 쌓는 편은 아닌데, 유독 마음속으로는 부글부글 냄비 끓듯 빨리 결론을 내놓고 실패냐 성공이냐 결과를 말하라고 닦달합니다.


실제로 일을 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정리해보니 '지나치고 극단적인 자기 문제화'가 항상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습관을 바꿔보려고 다음과 같은 주문을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매사 쉼표 하나를 찍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답답해도, 감정 섞인 이메일은 임시저장 / 퇴고하자.
(적어도 이 회사는) 늦는다고 안 될 일은 없으니까, 퇴고는 다음날 아침에 하자.


 

회사 복이 있어서인지 모든 일에 서둘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도 없이 전달했던 설득의 연락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거나, 아직도 갈피를 못 잡는 상대(들)에게 화가 잔뜩 나서 써 내려간 이메일은, 다음날 열어보면 대개의 경우가 '안 보내서 다행이다'라고 안도하며  그대로 휴지통으로 버려졌습니다. 


전화로 몇 번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실시간 언쟁에서 튀어나오는 예상 밖의 변수에 약한 편이라 썩 내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노의 감정도 글로 죽- 적어놓고 다음날 다시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분명해지기 때문에 꽤 도움이 됩니다. 횡설수설 갈피를 못 잡거나 빈틈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스스로를 공격하며 논리를 보완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잠시 묵혀둔 후 퇴고'는 글쓰기에 꼭 필요합니다.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기도 하지만, 영 말주변이 없어서요.)


'내가 옳다'거나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의 뿌리도 결국 '욕심' 아닐까요? 그 욕심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칭찬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순수한 마음입니다. 거기서도 사람은 기쁨을 느끼니까요. 하지만, 수단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해보면, 자잘한 실무를 하는 사람들이 다투는 일 정도는 한편에 미뤄두어도 회사나 조직에 큰 불이익을 초래하지 않습니다. 잠깐 숨 돌리고 와서 내일 얘기해도 월급은 정해진 날 잘만 들어옵니다. (직장인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이 글도 작가의 서랍에 하루 정도 묵혀두고, 내일 발행할 생각입니다. 너무 조급하지 말아요. 천천히 조바심 내지 않고 걸어도 언젠가 각자의 결승선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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