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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빈 Mar 21. 2022

방구석 일본어 16 : 天下り(낙하산 인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직원이 있다면..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직장, 60만 장병이 근무하는 '군(軍)'이라는 조직을 갓 떠나고 겪었던 일화를 이야기해볼게요. 


6년이나 근무한 '전 직장'에서 배운 거라고는 적과 싸울 준비(사격, 전술 공부, 훈련 등등) 뿐이었는데, 나와서 보니 세상은 이미 전쟁통이더라고요. 정작 뺏기고 또 빼앗는 다툼 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인데, 면접을 보는 족족 퇴짜 맞기 일쑤였고 전역을 코앞에 두고서는 진지하게 '경력도 없는데 몇 달 쉬면서 차분히 준비해볼까' 망상을 구체적으로 그려져 가던 불안한 시절이었습니다.


다행히 지방의 작은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어요. 사업을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은 신생 기업이었는데, 군에서 같이 근무하던 상사가 잘 봐주셔서 추천을 통해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돌아보면 여러모로 애증의 직장이었지만, 쉼 없이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어요.


그런데, 그 작은 조직 안에서도 정치가 난무했습니다. 회사가 세워졌을 무렵부터 함께한 창업 멤버들과, 저를 포함한 중도 입사자들로 만들어진 '굴러온 돌' 그룹의 갈등이라고 정리해보지만, 아무래도 후자는 뭉쳐서 대항한다기보다 매번 모략에 넘어가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생산 공정에 그가 들어가면 수율(=재료 투입 대비, 완성되는 제품의 비율)이 떨어진다는 농담 같은 소문으로 유명해진 제조팀장이 군 장교 출신이었고, 대표이사의 인척이기도 해서 아무리 그의 부정을 주장해도 뚫리지 않을 방패였다는 사실을 들었어요. 장교 출신을 채용했다는 전례가 있던 덕에 저도 취업을 했지만 좀 억울하기도 하고요. 


한동안 굴러온 돌 그룹에서는 술안주 삼아 '회사가 이래서는 안 된다'며 입을 모았던 시절이 있지만, 이내 시들해진 기운에 저도 그만 지쳐서는 남몰래 다음 직장으로 이직을 준비했었습니다.


조직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인간군상을 접하게 됩니다. 그중에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왜 저렇게밖에 일을 못할까?(또는 뭘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하지? 저거 아닌데..) 싶은 순간들을 어렵지 않게 접하는 곳이 바로 회사입니다. 그들은 암세포처럼 회사 직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전염시킵니다. '차라리 저 사람 월급 얼마를 나에게 떼어주면, 몇 배는 더 빨리 잘할 텐데',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일로 엮이니까 스트레스받네..'처럼 일하러 온 직장에서 의욕을 자꾸만 꾹- 하고 바닥까지 눌러주면 한동안 본 궤도로 돌아오기가 힘들어져요.


유행하던 'X이코 질량 불변의 법칙' 이 실존한다면, 오늘 만화에 등장하는 낙하산 인사(天下り/아마쿠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와 안 맞거나 일정 비율 이상의 직원과 일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할 겁니다. '와- 이렇게 일하기 좋은 조직이 있다니! 드디어 꿈의 직장을 만났다!' 하며 좋아할 날이 온다면, 내가 X이코 혹은 X라이라고 손가락질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이미 잘 사는 것 같은데 굳이 우리 회사로 와서 월급 받겠다고 앉아있는 이유는 뭘까요? 답답하지만 답을 모르는 것이 정신건강에 훨씬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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