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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빈 Mar 27. 2022

방구석 일본어 18 : ネタ(네타/소재)

누구나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






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도 굳이 제게 바통이 넘어오지 않는다면, 한 마디 하지 않고도 집에 가서 억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메신저로 대화했으면 하고 바라는 이상한 사람이에요. 아마 어렵겠지만 기본적은 대화는 전용 챗봇이 있어서 자동으로 처리해주는 망상을 하기도 합니다. 


2014년 즈음 처음 영업사원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고객과 만나기 전에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미팅을 시작해야 될까?' 걱정이 많아서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머릿속으로 그날 내가 해야 할 말들을 상상고는 했습니다. 자가용으로 이동하면 육성으로 혼자 상황극을 하며 부단히 연습했지만, 항상 제 마음만큼 순탄했던 미팅은 없습니다. 


그런 저도 낯을 가릴 뿐, 수다스러운 사람입니다.. 퇴근 후, 아내에게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가 '나도 스트레스 많이 받았으니, 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 주겠느냐'는 말도 셀 수 없이 들어봤어요. 어느 날은, '회사 이야기 안 하는 날'로 정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무엇이든 화제가 되어서 즐겁게 이야기하는 몇 안 되는 말동무예요.


거꾸로 딱딱한 직장상사나, 혈연이라고는 해도 가끔 만나서 서먹한 가족에게는 쉬이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대학 합격소식을 듣고 기뻤던 고3 겨울방학, 친하게 지내던 사촌 형 집에 놀러 가는 길에 이모에게 전화하여 금방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두세 마디 건네었을 뿐인데. 그 후 몇 년 동안 명절만 되면 대학 가면 사람이 변한다는 이야기가 화젯거리가 되었다니까요?


일본어는 사실 나도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게 해 주었습니다. 대학의 회회 모임에서는 내 순서가 돌아오기 전까지 기다리다가 시간이 다해서 기회를 받지 못하는 편이었고, 졸업 후에는 6년여를 (일본어로) 말할 상대 없이 지내는 대신 읽기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밥벌이를 위해 일본어를 써야만 한다니. 이방인들끼리 대화를 하려면, 지분의 절반은 통역을 위해 온전히 내가 갖게 된다니. 과연 제 일본어는 직장생활을 하며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새로운 어휘나 표현들을 접하게 되고 기회가 되면 바로 사용하며 머릿속에 오래 저장해두려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책에 적힌 예문들은 실생활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고, 일로 만난 사이에 적절한 화제를 찾으려면 한국이나 일본의 뉴스 등을 주의 깊게 보고 들어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정보를 탐내고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왕래하며 생각하는 선순환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만화에서 이야기하는 '이야깃거리, 소재'는 이 와중에 풍부하게 쌓였습니다. 즐거워서 보고 들었던 내용들은 자연스럽게 머리와 가슴에 오래 맴돕니다. 반대로 함께 힘든 경험을 한 사이에도 추억이 짙게 남지요.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직도 서툴지만 고객(또는 아직 서먹한 사람)과 원만한 대화를 위해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몇 년의 짧은 경험이지만 제가 생각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취향의 접점이 있는가?
또는 기꺼이 상대와 취향을 맞출 마음가짐을 가졌는가?


달변의 영업사원들은 후자(=맞추려는 마음)보다는 스스로 가진 화제들을 쏟아내며, 접점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타입의 사람들이 아닐까요? 저는 수동적이라서 기꺼이 맞출 각오는 하였지만, 일반적인 화제와는 동떨어진 취향을 가진 데다가 좁은 폭과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보니 바로 일의 본론으로 화제를 돌려버리는 것이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이런 저이지만 마음을 열고 대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기준'을 패스한 사람에게는 수다쟁이가 된다니. 마음 반응의 역치가 높은 편이기는 해도 마냥 답답한 사람은 아니어서 안심입니다. 아직 '실시간'은 많이 버겁지만, 차분히 기다려주고 귀 기울이는 좋은 만남이 앞으로도 많았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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