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태스킹은 성립하는가?
□□ 과장은 멀티 태스킹이 되니까, 뭐든 맡겨도 안심이 돼.
한창 새 회사에 적응하며 분위기를 파악하던 시절, 제가 많이 듣던 말입니다. 물론 저 사람은 제가 아니고요. 당시 제가 들어간 조직은 일본 본사의 여러 부문에서 날아오는 요청들을 기민하게 캐치하여 대응하는 부서였습니다. 한국에 있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제품의 사양(스펙)을 잘 듣고 전달하는 활동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원하는 목표는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각각의 수요는 우리가 먼저 나서 찾아야 할 때도 있었으며, 가끔은 원치 않지만 장차 가져올 수 있는 더 많은 가능성에 투자하는 마음으로 다소 무례한 주문을 받아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 선배 직원이 있었는데, 매사 업무처리가 빨라서 상사의 평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멀티 태스킹'이 가능했으니 나날이 신뢰도 쌓여갔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 전화 한 통 하기 전에 몇 번이고 이야기의 흐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연습하던 저는 그 선배가 마냥 부러웠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당시에 멀티 태스킹에 능하던 선배 직원은 팀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 밑에서 팀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시간이 지나 보니 달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멀티 태스킹에 대한 그들의 '정의'를 새롭게 고쳐주고 싶어 졌습니다.
어느 학자도 말했습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요. 단지, 여러 가지 일을 재빨리 '전환'하며 처리하는 것뿐입니다. 당시 선배 직원은 전환이 빨랐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전환의 스위치는 주로 '상사의 지시' 또는 '호출'로 눌렸던 것 같고요.
그동안 그가 쥐고 있던 일은 '잠시 멈춤(pause)' 상태가 되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지게(assign)' 됩니다. 동시에 하는 게 아니죠. 우선순위에 맞추어서 지금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될 일, 더 가서는 내가 해야 될 일,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로도 분류됩니다.
돌아보면, "일처리가 참 빨라(= 내 말을 잘 들어)", "일을 할 줄 아네(= 누구 말 들어야 잘되는지 눈치가 빠르네)"를 더 멋지게 포장해서 말하고 싶었던 욕심이 '멀티 태스킹'을 소환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봐요. 오늘 만화에서 언급하는 춤추며 노래하는 일은, 밤낮 모르고 같은 노래와 안무를 연습해서 팬들에게 선사하는 아이돌이어야 가능한 수준이 아닐까요?
단순히 서서 읽는 잡지도, 서서 먹는 가락국수도 '서 있는 행위'는 그렇게 버티고 있기 위해 수동적으로 취해지는 동작일 뿐이니까요.
지난 2년 동안 너무 빨리만 가려고 하던 세상에도 큰 제동이 걸렸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차분히 숨을 고르고, 이제껏 동시다발적으로 몰두해왔던 많은 일들에서 한 발짝 물러서 보면 어떨까요? 찬찬히 시간을 갖고 들여다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생길지도 몰라요.
이 만화를 그리던 21년 2~3월, 한국에는 클럽하우스가 화제였습니다. 녹음도 되지 않고, 그 시간 / 가상의 공간에서 함께한 사람들에게만 속삭이듯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그곳.(심지어 아이폰 유저들만 사용이 가능했고, 기 사용자의 허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던. 굉장히 폐쇄적인 SNS였지요.)
결국 그곳에서도 듣는 게 전부였던 저이지만, 비밀스러운 모임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어서 두근두근 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은 작년 이맘때, 어디서 무엇에 두근두근 하고 계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