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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Jun 22. 2022

three[θriː]에 대한 고찰

뜨뤼, 트리, 뜨리, 쓰리

항공분야에서 일하려거든 영어 실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근데 3년 동안 영어를 써왔고, 앞으로도 20년은 더 영어를 사용할 직업이지만 아직도 영어가 어렵다.

언젠가는 대학교에서 영어 글쓰기를 배우겠다고 'Advanced Writing' 교양 과목을 신청했었는데, 오로지 나만 순수한 목적으로 영어 쓰기를 배우기 위해 그 강의를 신청한 거였고, 그 외에 다른 학생들은 이미 완성형의 영어 작문 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빠르게 울면서 그 강의를 드롭(수강취소) 해야 했다.


입사를 준비하면서는 서류전형에서 가산점을 주는 자격증이나 영어 점수를 준비했다. 예를 들면 컴퓨터활용능력 1급, 한국사능력시험 1급, 워드프로세서 같은 것들. 이렇게 크게 어렵지 않고 단순 암기를 요하는 자격증보다는, 나는 영어 말하기 점수 취득에 애를 먹어야 했다. 20여 년을 한국 본토에서만 살았던 토박이가 느끼기에 영어 말하기 시험은 독학이 정말 어려웠다. 특히 우리 회사는 영어 말하기의 경우 토익스피킹 lv7, 오픽 IH 이상의 점수에만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어, 가산점을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험 대비가 반드시 필요했다.


오픽이든 토익스피킹이든 빨리 점수를 내는 게 중요했던 나는, 닥치는 대로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좋다는 강의도 들어보고, 교재를 사서 템플릿을 외워보기도 하고, 직접 답안을 작성해보기도 하고, 각고의 노력을 다 했지만 결국 나는 서류전형에서 외국어 가산점은 받을 수 없었다. 정말 끝까지 토익 스피킹은 lv6을 벗어나지 못했고, 오픽도 im3에서 더 나아가질 못했다. 가산점을 주는 등급에서 모두 바로 아랫단계였으니 나는 정말 내 말하기 실력이 원망스러웠다.


여하튼 내 영어실력은 의사소통은 가능하나 깊은 주제로의 토론은 안 되는 딱 그 정도의 수준인데, 그래도 멀쩡했던 내 'three' 발음이 이렇게 관제할 때 날 괴롭힐 줄은 몰랐다.





내가 느끼기에 유난히 우리 공항은 유도로나 활주로, 계류장  제원에 숫자 3 많이 들어 있다. 제일 많이 보게 되는 활주로도 33LR/34LR 주로 사용하고, 1터미널 쪽에는 R2 R3라는 유도로가 있으며, 1화물계류장에도 D2 D3라는 유도로가 나란히 있다. (주기장 3, 33, 233, 336, 633, 833... 등도..) 항공에서는 숫자 3 [뜨뤼] 아닌 [트뤼] 발음하게 되어 있다. 아마 숫자 2 혼동이 생기기 때문일 것인데, 웃긴  바뀐 발음도 two 비슷하게 t 넣어버리는 바람에 아무리 [트뤼]라고 발음해도 명확하게 구분이 되질 않는다. 숫자 3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three, 한글로는 [뜨뤼]라고 발음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발음이 문제인 건지, 조종사들은  발음을 정말로  알아듣지 못한다. 비율로 계산해보자면 50% 정도는 제대로 알아듣고, 50% 잘못 알아듣거나 2인지 3인지를 다시 묻는다. 이게  영어 발음의 가장  문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숫자 3의 발음을 어떻게든 알아듣기 쉽게 고쳐보고자 노력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발음을 [뜨리]로 고쳤고, 이후에는 [뜨뤼]라고 하며 뒷 글자의 억양을 많이 높였고, [트리]도 써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후 [쓰리]라는 발음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그냥 콩글리쉬처럼 편하게 [쓰리]라고 발음한다. 예를 들어 유도로 R3는 [로미오 쓰리]로, 633번 주기장은 [스탠드 식스 쓰리 쓰리]로 편하게 발음한다. 보통은 콩글리쉬를 사용하면 영어가 모국어인 조종사들은 잘 알아듣질 못하는데, 신기하게도 [쓰리]는 모두가 알아듣는다. 한국인은 물론이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동남아시아나 중동 쪽 조종사들도 모두가 한 번에 알아듣는다. 숫자 3의 발음 [쓰리]로 뭔가 작은 세계 대통합(?)을 이룬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모든 관제사가 나처럼 발음하는 건 아니다. [뜨뤼]나 [뜨리]처럼 발음하고도 아주 정확하게 숫자 3을 전달하는 관제사가 훨씬 많다. 그냥 뭔가 내 구강구조나 목소리 크기의 문제인 것 같긴 한데, 숫자 3이 극도로 싫어지면서 제일 싫어하는 숫자로 꼽힐 뻔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돼서 다시 또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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