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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Sep 22. 2022

청주공항 활주로 무단 진입 사건의 재구성

부딪칠 뻔했어요. 활주로 들어왔다고요, 항공기가!





정확한 관제 용어의 중요성


<해당 교신은 항공기 준사고 조사보고서와 CVR 기록을 바탕으로 직접 작성했습니다.>

"가"항공 기장(CAP/가)과 관제기관 간 대화는 초록 글씨로, "나"항공 기장(CAP/나)과 관제기관의 교신은 파란 글씨로 표시합니다.

이 글에는 특정 항공사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없으므로 항공사 이름은 "가", "나"와 같이 표기합니다.

사고 조사보고서 : 청주공항 활주로 무단 진입 준사고 조사보고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발생일시 : 2016년 3월 18일 13시 12분(UTC)

발생장소 : 대한민국 청주국제공항 활주로 24R




CAP/가 : Ground, RK8444, Fully ready NO.4

- 가항공 기장 : 지상관제사, RK8444, 4번에 있고요 출발 준비 다 됐습니다.

ATC(GND) : RK8444, Push back approved face B3.

- 관제사 : RK8444, 기수를 유도로 B3로 향하게 하십시오. 후방 견인을 허가합니다.

CAP/가 : OK. Push back approved and a face A3 Confirm?

- 가항공 기장 : 네. 유도로 A3 바라보는 후방 견인이라고요?

ATC(GND) : Negative, B3.

- 관제사 : 아뇨 유도로 B3요.

CAP/가 : OK. B3, Face B3, RK8444, Copy

- 가항공 기장 : 아, B3를 보라고요. 알겠습니다.



어느 안개 낀 봄날, 위와 같은 교신을 기점으로 가항공은 청주공항에서의 비행을 시작합니다.



실제 준사고 당시 near-miss 상황을 나타내는 그림. 녹색-가항공, 청색-나항공



안개가 좀 껴서 시정이 불량한 날에는 비행장관제가 어려워진다. 특히 관제실 시야에서 지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등 앞이 하얗기만 하면 관제사는 오로지 레이더 장비에만 의지해서 관제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평소보다 항공기 간격을 넓게 유지하며, 각종 등화시설을 적절히 사용하는 등 관제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청주공항에서도 악기상과 인적요인이 겹쳐 지상에서의 니어미스(near miss)가 발생했던 사례가 있다.


시작은 평소와 같았다. 가항공 소속의 항공기는 청주공항을 출발하여 중국 다롄공항으로 비행할 계획이었다. 지상관제사에게 후방 견인 허가를 받은 RK8444는 곧 이동 준비를 시작한다.


CAP/가 : RK8444, Ready for taxi

- 가항공 기장 : RK8444, 이동 준비됐습니다.

ATC(GND) : RK8444, RWY 24R, Taxi via B3, Altimeter 29.87

- 관제사 : RK8444, 활주로 24R입니다. B3 유도로로 이동하시고요, 고도계 수정치 29.97예요.

CAP/가 : ah RWY 24R via B3, Altimeter 29.87

- 가항공 기장 : B3 통해서 활주로 24R, 고도계 29.87이요.


언뜻 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는 바로 이 교신에서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발생한다. 지상관제사는 출발 활주로를 24R로 명시(RWY 24R)하면서, 'B3 유도로로 이동(=taxi via B3)'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가항공 기장의 복창이 애매하다. 'B3 유도로를 통해 활주로 24R로 이동(=RWY 24R via B3)'으로 복창한 것이다.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둘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지상관제사는 활주로 대기 지점(holding point) 전까지만 항공기를 이동시키려고 했던 의도였겠지만 가항공의 조종사 셋은 활주로에 진입해도 된다는 뜻으로 지시를 해석했다. 어쨌든 가항공의 항공기는 B3 유도로를 따라 활주로 24R로 이동을 시작한다.


ATC(GCA) : SK1958, GCA, Radar contact. Cleard ILS/DME Z RWY 24R approach. Report Leaving BIDAN.

- 관제사 : SK1958, 착륙유도관제사입니다. 레이더 확인됐어요. ILS/DME Z RWY 24R 접근을 허가합니다. BIDAN을 지날 때 보고하십시오.


당시에 활주로 24R에 가항공만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테지만, 하필이면 또 동시간에 청주공항 활주로 24R로의 착륙을 준비하는 나항공 비행기가 있었다. 나항공 비행기는 청주공항에 최종 접근하기 위하여 *GCA와 교신하는 중이었다.

*GCA(Ground Controlled Approach) : 군 관제시설에서의 관제사 포지션 중 하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시계(시정)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레이더 접근을 통하여 항공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주로 접근관제사와 비행장 국지관제사 사이의 단계에서 항공기의 최종 접근을 돕는다. 청주공항에서는 착륙까지 GCA 관제사가 전담한다.


ATC(GCA) : SK1958, Cheong Ju field condition IFR. If runway not insight, execute missed approach.

- 관제사 : SK1958, 청주공항 시정은 계기비행에 적합한 정도입니다.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실패 접근절차를 수행하십시오.

CAP/나 : Wilco, SK1958.

- 나항공 기장 : 알겠습니다, SK1958.

ATC(GCA) : SK1958, Continue ILS approach, report runway insight.

- 관제사 : SK1958, ILS 접근 계속하시고요, 활주로 보이면 보고하십시오.


당시 청주공항은 야간에 안개가 끼어있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조종사가 육안으로 활주로를 확인할 수 있어야 착륙이 가능했다. 그 이후로 기상은 점점 좋아져 충분히 착륙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ATC(GCA) : SK1958, Runway 24R, wind calm, cleared to land.

- 관제사 : SK1958, 활주로 24R, 바람은 잔잔해요. 착륙을 허가합니다.

CAP/나 : Runway 24R, wind calm, cleared to land, SK1958.

- 나항공 기장 : 활주로 24R 착륙하겠습니다, SK1958.

ATC(GCA) : SK1958, Now RVR 450 say intention?

- 관제사 : SK1958, 지금 RVR 450m인데요, 착륙하실 건지 말씀해주세요.

CAP/나 : SK1958 We have field insight.

- 나항공 기장 : 네 저희 활주로 보입니다.

ATC(GCA) : SK1958, Roger, Contiune approach.

- 관제사 : SK1958, 알겠습니다. 계속 접근하십시오.


특이하게도 청주공항에서는 GCA라고 불리는 착륙유도관제사가 착륙 허가 지시를 준다. 착륙 허가를 결정하는 것은 청주공항 비행장의 국지관제사이므로, 국지관제사(=local, TOWER)가 착륙유도관제사(=GCA)에게 유선으로 SK1958편의 착륙 허가를 전달한다. 최종적으로 SK1958편은 관제사 허가를 받고 활주로에 착륙하게 되었다. 이후 SK1958은 국지관제사에게 이양된다. 그런데...!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나항공이 기수를 좌측으로 틀었다.



CAP/나 : Active Rwy 24R 항공기 incursion(진입)하는 항공기는 뭐죠? (한국어)

CAP/나 : 부딪칠 뻔했어요. Runway 들어왔다고요, 항공기가! (한국어)


원래 활주로에 착륙하는 항공기가 있는 경우에 활주로는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착륙 시 관제사도 'cleared to land, cleared for take off'와 같이 활주로를 비워두었다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비웠다'라는 뜻이 무색하게도, 가항공 비행기가 관제지시와 다르게 활주로 대기 지점을 통과하여 활주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도착하는 나항공의 비행기가 B3 유도로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가항공 비행기를 피하기 위하여 왼쪽으로 약 6m 정도 회피 조작하여 가까스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또 가항공 비행기도 착륙하는 나항공기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때 두 비행기의 최소 근접거리는 3m로, 가항공 비행기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거나 나항공 비행기가 회피 조작하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부딪쳤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 이제 왜 이런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알아봐야겠다. 일단 이 상황은 관제사의 이동 지시에서 비롯되었다.


CAP/가 : RK8444, Ready for taxi

- 가항공 기장 : RK8444, 이동 준비됐습니다.

ATC(GND) : RK8444, RWY 24R, Taxi via B3, Altimeter 29.87

- 관제사 : RK8444, 활주로 24R입니다. B3 유도로로 이동하시고요, 고도계 수정치 29.97예요.

CAP/가 : ah RWY 24R via B3, Altimeter 29.87

- 가항공 기장 : B3 통해서 활주로 24R, 고도계 29.87이요.


바로 이 부분이다. 'RWY 24R, taxi via B3.' 이러한 구성의 관제용어는 FAA(미연방항공청)에서 사용하는 지상 활주 관제용어로, 용어 자체에 '활주로에 진입하라'는 뜻이 내포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관제사의 관제용어에는 틀린 게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종사의 복창이 애매했다. 'RWY 24R via B3'라는 말은 B3을 통해 활주로 24R까지 들어가라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ICAO와 같이 조금 더 보수적인 기관에서는, 특히 어떤 대기 지점에서 대기가 필요할 경우, 대기 지점을 포함하여 관제지시를 하게 되어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우리 관제시설에서 사용하던 관제용어도 'taxi to spot 8E via R11.'과 같던 것이, 'taxi via R11, hold short A.'와 같이 변경되었다. 둘의 의미는 비슷하나 후자의 관제용어가 '유도로 A 진입 전 정지하세요.'라는 관제사의 의도를 더욱 직관적으로 이해시키기 쉬운 편이다.


RWY 24R, taxi via B3.

(taxi to) RWY 24R via B3.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정확한 관제용어의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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