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순삭 o__ov
인천공항에 눈이 많이 쏟아진다는 소식이 들리면 참 고맙게도 지인들이 내 걱정을 한다. 일단 나부터가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눈 안 오게 심심하면 물 떠놓고 기도 좀 해 줘.‘라고 하는 바람에 하기 싫어도 내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내 생존여부가 얘깃거리가 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안부를 묻는다. 눈이 오면 왜 계류장관제사가 바쁜지는 이전의 글 들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니 오늘은 밥 먹는 얘기나 커피 먹는 사람 사는 얘기를 좀 해보면 어떨까 한다.
예보는 1cm 적설이었지만 10cm 눈 폭탄이 쏟아진 작년 11월 27일에도 날씨에 왕창 당했는데 이번 설 연휴도 내내 관제탑 신세를 졌다. 연휴 시작인 월요일부터 계속 눈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이번 주는 체감상 타워에서 살았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일반적인 상황과 대비해서 눈이 오면 적어도 세네 배 이상은 관제 교신이 늘어나는 것 같다. 우리 쪽만 해도 제방빙 존zone을 배정하고 순서를 지정하는 포지션과 제방빙 패드pad를 관할하는 포지션, 원래 계류장관제 포지션을 어시스트assist 하는 사람까지 한 관제소에 인원이 족히 네 명은 더 필요하다. 여기에 관제소로 몰아치는 전화를 응대하는 감독 포지션도 자리를 지켜야 하니 추가 근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나 할까. 뭐 그렇다.
그나마 눈이 많이 쌓이지 않고 적당히 녹아줬기에 망정이지 여기에 제설장비까지 유도로에 올려두면 계류장은 포화상태가 된다. 지금도 제방빙이 끝나고 몰려나가는 비행기를 순서대로 띄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2터미널과 새로운 제빙장 등 주기장수는 계속 늘리는데, 계류장유도로는 숫자를 줄여버리거나 너무 최소화해서 만드는 바람에 전체 교통량이 늘어나는데도 이동 동선 확보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아차. 힘든 얘기는 넘어간다고 했는데 또 해버렸다.
밥!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식사는 챙겨야 일할 힘이 나는 법이다. 눈이 오면 우리는 자리를 비우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한 사람이 먹을거리를 사서 관제소까지 배달한다. 아침부터 눈이 쏟아져서 밤까지 내내 눈이 오면, 삼시 세 끼를 전부 타워에서 챙겨 먹기도 한다. 메뉴는 다양하다. 햄버거, 돈가스, 김밥 등 포장이 가능한 것들은 다 그날의 메뉴가 된다.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식사를 챙기는 것도 잠시, 근무석에서 밥을 못 먹은 동료와 곧바로 근무 교대를 해줘야 한다. 혹시나 카페인이 모자랄까 하나씩 받은 커피잔을 들고 근무석으로 향한다. 눈이 오면 커피잔과 음식 포장 용기로 50L 쓰레기통이 하루 만에 가득 찬다.
공항에서 눈을 맞은 지도 벌써 다섯 해가 훌쩍 넘어 그런가 다행히도 이제 제빙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좀 덜하다. 밥 먹으며 농담하다가 깔깔 웃기도 하고, 근무가 여유로울 때는 바쁜 다른 포지션을 돕기도 하다 보면 금세 눈 오는 하루가 지나간다. 주파수가 계속 막히는 radio jamming이 되거나 뭔가 뜻대로 안 되면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순간일 뿐 금방 해결된다. 눈이 오면 승객도 힘들고, 지상 운항 객실 승무원도 힘들고, 지상조업요원도, 정비사도, 항공사 사람들도 힘들고 관제사도 모두가 다 힘든 걸 잘 아니까 조금 더 친절하고 발랄하게 관제하려고 한다.
명절연휴에는 조종사로부터 아주 많은 새 해 복을 받을 수 있는데, 이번 연휴에는 주파수가 하도 혼잡한 바람에 인사를 생략하기도 해서 받을 복을 좀 덜 받고(?) 줘야 하는 복도 좀 덜 드려서(?) 아쉬울 따름이다. 내년 설은 눈이 오지 말고 여유로워서 올해 미처 못 모은 복을 더 많이 받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특식 먹고 복까지 먹으면 욕심쟁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