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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Feb 07. 2021

특명, 비행기에 붙은 얼음 옷을 벗겨라

겨울엔 비행기도 추우니까요

펑펑 눈이 오는 날,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눈이 오면 내가 타는 항공편이 지연될 거라는 건 다들 경험에서 알고 있겠지만, 이륙을 위해 비행기에 탑승한 후에도 운이 나쁘면 한 두 시간씩 공항 땅 위에서 날지 못하고 발이 묶여야만 한다. 벌써 따뜻한 나라의 특급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한 후 맛집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야 할 시간인데 내가 탄 비행기는 도무지 날 파라다이스에 데려다 놓을 생각을 안 한다면. 별로 붐비어 보이지도 않는 공항에 갇힌 나는 왜 비행기에 앉아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억울한 비행기의 입장도 이해해 주시기를. 사실 그 시간들은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고, 눈이 비행기에게 입혀준 얼음 옷을 떼어내는 필수적인 안전 작업을 위한 시간이다. 따뜻한 털실 니트를 온몸에 둘둘 감싸고 있어도 추울 겨울에 얼음 옷을 입고 있다면 뜨신 옷을 입혀주진 못해도 차가운 옷은 당연히 벗겨줘야 하니까.


항공기 동체 표면에 붙어있는 얼음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 운항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얼음을 제거해줘야 하는데 이 작업을 제빙(除氷, de-icing)이라 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더 차가워지는 그 하늘에서 동체에 또다시 얼음이 붙지 않도록 하는 작업을 방빙(防氷, anti-icing)이라 부른다. 두 단어가 하나로 되면 '제방빙'이라고 일컫는데, 습도가 높거나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모든 비행기가 거의 필수로 진행하게 된다. 추운 날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없어서 기내에서 대기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지루한지 잘 모르겠지만, 굴러가고 있는 비행기에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해진 장소에서 가만히 있는 비행기 안이라면 아주아주 심심할 것 같긴 하다.



NASA 교육 모듈에 올라와 있는 de-icing brush 사진



이제 궁금해진다. 그럼 눈은 마당을 쓰는 것 마냥 빗자루로 비행기에서 쓸어내리는 것인가. 예전에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빗자루로 날개에 쌓인 눈을 치웠다. 지금도 자동차처럼 아주 작은 비행기라면 가능하긴 하다. 고무로 긁어내거나, 빗자루로 쓸어내리거나, 고압의 공기로 날려버린다. 인천공항처럼 큰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바쁜 곳에서는 보다 효율적이고 신속한 방법을 채택하여 뜨거운 물이나 '제방빙 용액'을 동체 표면에 분사한다. 이 용액은 순식간에 눈과 얼음을 녹여버릴 만큼 강력한 액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에게도, 환경에게도 좋지 않다. 인천공항은 정해진 제방빙장에서만 제방빙 용액을 분사하도록 되어있고 용액 처리시설도 갖추어져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아무리 폐수처리시설이 걸러준다고 해도 지구는 이 엄청난 액체를 싫어할 게 분명하다.



똑같이 나사 교육 모듈(..)에서 온 뉴어크공항의 적외선 제방빙 시설



그래서 다른 방법도 사용한다. 현대 기술이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이슈에서 불가결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격납고 시설을 적외선(infra-red)으로 데운   안에 들어간 항공기 위의 얼음이 자연스럽게 녹도록 하는 방법도 쓰인다. 전자레인지에 냉동식품을 넣고 2 정도 돌려버리는 것처럼, 고온의 거(heated hangar) 동체를 집어넣어버리는 것이다. 사람의 손이 닿아야만 눈과 얼음을 녹일  있었는데, 기계에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눈과 바이바이할  있다니 얼마나 간편하고 좋을까! 실제로는 비행기가 행어를 먼저 통과한 , 최소한의 제방빙 용액으로 눈과 얼음을 치우게 된다고 한다. 설치비용이 너무 비싸다 보니 인천공항에도 없는 것처럼 아무데서나   없는 장치라는  흠이지만. 뉴욕 JFK공항에서 무려 17 전에 실제로 도입되었다. 최대 90%까지 제방빙 용액 사용량을 줄일  있었다.


아름다운 사계절이 갖춰진 나라답게 추운 겨울 하늘에서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비행기들은 인천공항 계류장 밖으로 바퀴를 떼어내지 못한다. 제방빙장을 배정하고, 그곳까지 이동시키는 것도 관제사의 업무이기 때문에 특히 제방빙 교통량이 많은 경우에는 관제석을 추가로 더 열기도 한다. 수도권에 정말 엄청난 눈이 내렸던 그 날, 본인 주파수 하나에 거의 50대 이상의 비행기를 데리고 있었다-는 교관님의 예전 이야기는 상상만 해볼 뿐 얼마나 바빴을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보통 호출부호(call sign)로 항공기를 구분해야 하는데 리스트에 50대 넘는 비행기 호출부호가 있었다면 바깥에 늘어져 서있는 어떤 비행기가 이 호출부호인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비행장관제의 기본인 육안관제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치달았을 것이다. 이렇게 바쁠 때에는 밥 먹는 시간은 사치가 된다. 장병들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예쁜 쓰레기' 취급을 받는 그것은, 관제사에게도 '하늘에서 내리는 예쁜 쓰레기'다.


비행기 표면과 마찬가지로 공항의 아스팔트 표면도 당연히 눈과 얼음 없이 녹여야 한다. 차가 빙판에 미끄러지는 것처럼 비행기도 빙판에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제설차로 눈을 밀어버리고 유도로 가장자리로 스노우뱅크(snow bank)를 쌓아두는데, 나중에는 이 스노우뱅크를 녹이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요즘에는 눈오리 집게 때문에 눈이 남아나는 일이 없어 보이던데 <공항 유도로 갓길에 쌓인 스노우뱅크로 눈오리 만들기!> 체험이라도 하면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재빠르게 눈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라고 시시한 생각을 했다. 비행기 바퀴로 밟아서 때가 타는 탓에 흰 눈오리가 아니라 검은 눈오리가 되겠지만.


입춘이 지나니 날이 제법 풀려서 이제 눈 하고는 사이가 많이 멀어진 것 같아 다행이다. 미세먼지하고 안개가 다시 친구 하자고 열심히 달려오는 계절이 오고 있지만. 나는 너네랑 친해지기 싫어라고 하며 도망쳐도 아무 일도 없는 현장보다는 비정상 상황이 있는 현장이 더 긴장한 채로 정확히 관제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이제는 눈도 안개도 먼지도 좋아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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