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td #outfitoftheday
저 관제사로 일해요!라고 하면 가끔 듣는 질문이 있다.
어, 그럼 관제사용 유니폼도 따로 있나요?
공항에서 일하는 여러 직원들이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각자의 예쁜 복장을 입고 일을 해서 그런 걸까. 가끔은 관제사도 비슷한 게 있지 않냐는 궁금이 생기나 보다. 아쉽게도, 관제사는 유니폼이 없다. 대신 그냥 일반적인 직장인들보다는 복장에 대한 자유도가 아주 높은 편이라서 그냥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기도 하고, 후드티에 카고 바지를 입는 것도 본인의 자유다.
트레이닝 복은 입지 마세요!라고 법에 정해진 바도 없으니 사실 그렇게 입어도 무죄다. 실제로 밤을 새우는 근무 동안에는 편하게 있기도 하고. 패션쇼 나가는 것처럼 옷을 차려입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딱 하나 하면 안 되는 게 있는데, 국토교통부 고시 <항공교통업무 운영 및 관리규정>에 그게 뭔 지 나와있다.
<항공교통업무 운영 및 관리규정> 제3장 항공교통관제업무
제44조(색안경의 제한) 관제탑 관제사는 관제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다음 각 호의 색안경을 착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1. 회색(Photo Gray)안경
2. 편광 색안경
그러니까 관제탑에서 일하는 모든 관제사는 선글라스 등 색안경을 끼고 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동일한 고시 제33조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타워에서 관제업무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창 밖으로 지나다니는 교통을 확인하고 감시하는 일이니까. 우리 팀이야 전부 관제탑 관제사여서, 훈련 교범이 그렇게 자세히 적혀있지 않아 잘 몰랐는데 실제로 고시를 읽어보니 '관제탑 관제사(=비행장 관제사)'에 고시 적용 대상이 한정되어 있었다. 접근관제나 항로관제사는 선글라스 끼고 일해도 무죄(...)
<항공교통업무 운영 및 관리규정> 제3장 항공교통관제업무
제33조(관제탑의 기능 등) ① 관제탑에 근무하는 관제사는 항공기와 차량의 충돌 방지 및 공항·비행장 주변의 안전하고 신속한 항공교통흐름을 유지하기 위하여 적절한 지시와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
② 관제탑에 근무하는 관제사는 기동지역에서의 항공기, 차량 및 인원과 공항/비행장 주변에서 비행중인 항공기에 대하여 육안관측을 우선으로 감시하여야 하며, 저시정절차가 운영 중인 상태에서는 관제탑레이더전시기 등 보강된 시설을 이용하여 육안관측을 하여야 한다.
뭣도 모르고 회사에 막 들어왔을 때에는 채용형 인턴의 신분이었던지라, 아주 포멀한 회사룩으로 옷을 차려입고 다녔었다. 학교에는 맨투맨에 청바지에 후드티나 입고 다녔었는데 입사하고 나서는 블라우스나 색색의 슬랙스를 입고 다니기도 했다. 우리 팀으로 발령이 나고 현장으로 오기 전에는 옷을 어떻게 입고 다녀야 하는 고민이 생겼었다.
쿨하게 같은 팀 선배님이 복장은 완전 자유라며 찢어진 청바지도 입고 다녀요!라고 하시는 말씀에 설마,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다. (우리 회사는 좀.. 많이.. 보수적이다.) 다만 아주 짧은 치마나 운동복같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옷은 다들 피해서 잘 입고 다니신다.
근데 너무 프리하게 하고 다니다 보면 스스로 '그래도 회사에 가는 건데, 출근 복장이 좀 양심 없나?'라는 생각이 들어 주간 근무를 하는 날에는 나름대로 비즈니스 캐주얼처럼 입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주아주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관제사 집단에도 유니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복장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아무래도 야간근무가 있는 직업이다 보니, 매일매일 입는 건 좀 곤란할 것 같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군인의 정복처럼 공식적인 자리나 통일감을 보여야 하는 날에 입을 수 있는 포멀한 정장 같은 게 있었으면 한다. 좀 별로려나. 어떤 의미에서는 대학교의 과잠처럼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니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인천공항에 놀러왔다가 아침 9시쯤 찌든 얼굴로 집에 가는 캐주얼룩의 직장인을 보았다면 관제사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가 아니라 합리적 의심일 수도 있습니다.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