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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Oct 13. 2021

오늘도 슬쩍 고장 나는 몸

관제사와 운항관리사를 꿈꾸는 후배님들에게

원래가 천성이 엄살을 잘 못 피운다. 어느 정도냐면, 워낙 콧속의 실핏줄이 약해 학교 가기 전 아침마다 코피를 대야에 핏빛 바다마냥 한 가득 받을 만큼 흘려도 어떻게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으려고 했던 정도. 강의 들으러 가던 지하철 안에서 몸뚱이의 단골손님인 미주신경성 실신이 찾아와 눈앞이 하얘지고 토할 것 같아도 잠깐 내려서 쉬었다가 다시 학교로 향했던 정도.



일어날 시간이다 닝겐



웬만큼 아파서는 아프다는 소리 자체를 잘 안 하는 스타일이지만 여기선 엄살을 좀 피워야겠다. 요즘에는 진짜 머리가 자주 아프다. 부엉이 기질이 강해서 아침에는 자고 밤에 말똥거리는데, 이게 내 몸이 원할 때 자연스럽게 자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강제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스케줄에 따라 매번 바뀌는 시간에 자연스럽지 않게 자고 일어나야만 하기 때문에 부엉이고 뭐고 다 소용이 없다. '교대근무 적응'이라는 것을 레벨업 시키기 위해서 패시브 스킬로는 불면증을 사용하고, 액티브 스킬로는 두통이 날 돕는 느낌이다. 머릿속에 있는 쥐 한 마리가 너 이제 좀 자!! 너 이제 그만 좀 자!! 하면서 떼쓰고 바닥에서 구른다. 억지로 잠을 더 청해서 잠이 너무 넘쳤거나 잠이 너무 부족할 때면 꼭 쥐가 난리를 치는데 타이레놀이 근처에 없으면 그렇게 짜증이 돋는다.



교대근무의 세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어쩌다가 남들 하는 9 to 6의 5일제 근무가 아닌 교대근무를 하게 된 것인가!

에 대해 진심으로 고찰해보자면 학부에서의 세부 전공 선택에서 90% 정도로 정확해진 것 같다.

'항공교통학'을 전공하면 크게 관제사 또는 항공사 소속의 운항관리사의 큰 두 줄기로 졸업생들이 뻗어나가는데 재밌게도 둘 다 항공기 운항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직업이라 교대근무가 필수다. 그 두 직업 대신 다른 걸 선택하는 졸업생들도 있긴 하다. 그치만 대부분 그 두 줄기에서 거의 벗어나지를 않는 것이, 표본은 작지만 나와 친했던 과 동기 세 명 중 두 명은 관제사, 한 명은 운항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전공으로 항공교통학을 선택한다면 그와 동시에 교대근무에 대한 몸과 마음의 준비 또한 되어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너무나 취직이 어려운 세상에 운 좋게 들어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취준생 입장에선 어디든 입사가 먼저지 뭐 교대근무가 대수랴.


바쁘게 진행되고 있는 채용 절차에 따라 올해 안으로 우리 팀은 새로운 인원을 세 명이나 더 받게 된다. 돌이켜보니 입사 면접 때 면접관께서 '교대 근무는 힘들 텐데, 건강관리 어떻게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하셨는데 질문 자체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대 근무는 힘들 텐데, 평소에 자주 아프진 않나요?'로. '네, 자주 아픕니다.' 할 지원자는 아무도 없겠지만. 나도 혹시나 입사 전 건강검진에서 떨어질까 봐 약 이 주 전부터 식단관리를 했었다. 아파도 취직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



코 끝에 닿는 공기가 상쾌한 계절이 왔다



특히나 아침 퇴근하는 날에, 슬쩍슬쩍 헐거워진 나사가 빠지는 것 같은 몸을 질질 이고 걷다 보면 이렇게 살다간 곧 죽겠다 하는 직감이 온다. 그래서 교대 근무하는 직장인에게 운동은 필수라고 하는가 보다. 나사를 다시 조이기 위한 수단은 정녕 운동밖에 없는 것인가. 이제는 미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과 함께 늙어가는 몸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새로 들어오는 팀 신입사원들에게는 내가 또한 들었던 것처럼 꼭 건강 챙기라고, 운동 열심히 하라는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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