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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Oct 21. 2021

공항에 안개가 가득 끼면 비행기는 어쩌나

1도 안 보여요, 근데 관제는요?

2년 전 여름, 아침에 출근을 인천공항으로 하면서부터 격렬하게 느낀 게 하나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축축한 기분. 아... 습하다.


바닷가의 벌을 메우고 지은 공항이라서 인천공항은 습도가 높다. 인천공항은 엄연히 '영종도'라는 섬에 위치한 곳이다. 해무라는 안개가 심심하면 들이닥치는 곳이라서 특히나 고온다습한 계절에는 관제탑에 있다 보면 앞도 잘 안 보인다. 심각하면 진짜 관제탑 바깥의 풍경이 불투명한 채로 온통 하얗기만 한 경우가 있는데, 눈보라가 들이닥쳐 창 밖이 하나도 안 보여요! 하면 진짜 이런 느낌일 것 같다고 상상한다. 차라리 왕창 춥기라도 하면 습하진 않지.



'이 정도면 양호한데?' 인 저시정 상황



특히 습도가 높은 날, 사람의 눈 앞으로 관측 가능한 거리가 한 200m밖에 안 된다고 하면, 관제탑의 창 밖은 그냥 희끄무레 칙칙한 도화지다. 이게 바로 땅 위에서 관찰하는 거랑 또 달라서, 아파트 높이로 약 2-30층 되는 관제실에서는 바닥보다 더 바깥이 안 보인다. 이렇게 안개가 잔뜩 낀 상태를 항공 용어로 *저시정이라고 하는데, 봄이나 여름에 인천공항에 자주 놀러 오는 불청객이다.


*저시정 : 항공 용어. 가시거리가 짧아 안전한 항공기 이착륙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면 관제기관에서 저시정 경보를 발령한다. 인천공항은 1단계와 2단계로 구분하며, 간단히 말해 가시거리가 550m 미만일 때 1단계를, 400m 미만일 때 2단계를 발령한다.


어라. 관제탑 관제사의 관제 기본은 육안 관측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창문 밖으로 하나의 비행기도 볼 수가 없잖아요. 어떻게 관제하시나요.


라고 묻는다면 요즘은 21세기잖아요.라고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관제할 때 내 눈앞에는 터치 패널까지 포함해서 총 아홉 개의 모니터가 있다.

- 공항 밖에서 접근하는 항공기를 그래픽으로 보는 모니터 한 대

- 공항 이동지역 안에서 움직이는 교통(항공기, 견인차량, 작업차량)을 그래픽으로 보는 모니터 한 대

- 이동지역 유도로 등화를 조작하기 위한 모니터 한 대

- 이동지역 감시를 위한 CCTV 모니터는 세 대

- 출도착편 항공기 리스트를 확인하고 허가 시각 등을 기록할 수 있는 모니터 한 대

- 활주로 기상정보가 보이는 모니터 한 대

- 주파수 교신을 위한 터치패널 장비 한 대

솔직히 (가끔) 정신이 사납다.


이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모니터로 우리는 실시간으로 공항 안에서 움직이는 교통을 파악한다. 그래서 창문 밖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도 모니터만 보고 관제를 할 수는 있다. 근데 창 바깥의 상황과 매치하지 못하니까 솔직히 답답하다. 가끔 장비에 작동 오류가 생겨 이상한 타깃이 모니터에 표출되기도 하고. CCTV로 지상의 상황을 확인하기도 하는데, 여기 꼭대기 관제실에서 보는 것보다 CCTV로 보면 차라리 비행기 실루엣이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웃긴 게, 같은 공항이어도 위치마다 시정이 또 달라진다.



기자님, 관제탑 세 갠데요.. 나머지 두 개는 어디로.. 머니투데이.



인천공항의 관제탑 세 개는 1/2 활주로, 그리고 3/4 활주로 사이에 위치한다. 저어기 동쪽 2활주로부터 저어기 서쪽 4활주로까지 약 3km 정도인데, 이게 생각보다 먼 거리라서 동쪽에 있는 활주로는 깨끗하게 잘 보이고 서쪽에 있는 활주로는 하나도 안 보이기도 한다. 활주로도 하나에 거의 3-4km인 거대한 길이의 시설인지라, 첫 부분(touch down zone)과 중간 부분(mid point), 말단(roll out)으로 구분해서 시정이 관측된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조종사에게 가시거리 정보를 제공하는 건 관제사 몫이다. 아래의 용어와 같이 말한다.

"RUNWAY 33L RVR TOUCH DOWN ZONE 350, MID POINT 300, ROLL OUT 250."

*단위는 미터(m).


안개가 가득가득 끼어 저시정 2단계 발령기준인 400m 아래로 시정이 내려가도 비행기는 뜨고 내릴 수 있다. 다만 약 250m 아래로 가시거리가 관측되면 그때부턴 항공기 탑재장비 조건 충족 여부나 조종사 숙련도에 따라 비행기가 뜰 수도 있고 못 뜰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출발 또는 도착 지연이 발생한다. 몇 개월 후의 해외여행 출발일 기상을 맞출 순 없으니 승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그 날의 날씨는 운에 맡기게 되는데. ㅠㅠ


기상이 좋지 않으면 승객뿐만 아니라 관제사들도 신경이 쓰인다. 우리 팀 관제사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 '눈 많이 내릴 때! 공항 바닥 유도로 위에 쌓인 눈을 전부 없애고, 비행기 바깥에 있는 눈도 녹여야 할 때!'인데 여기에 눈보라가 들이닥쳐 저시정까지 발효되면 관제실은 그야말로 대환장 카오스가 된다(고 전해 들었다).



멀리서 보면 그냥 귀여운 380이 옹기종기 옹기종기
땅에서는 이 따 시 만 해요



관제 초보의 입장에서는 그 카오스 상태가 아직 못 겪어본 상황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차라리 지금처럼 비행기가 없을 때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배님들이 이 말을 들으면 그런 소리는 입에도 올리지 말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나중에 비행기 많~~~아졌을 때 당황하며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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