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바로 접니다. 훗.
이상하게 *mbti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흥미롭다.
혹자는 유사과학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사실 **두 명의 심리학자가 매달려서 만든 역사가 깊은 심리검사다. 대부분은 핸드폰으로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페이지에서 몇 분만에 쿨하게 야매로 검사를 끝내버리고 본인의 성향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혈액형이나 별자리, 띠를 가지고 사람 성격을 구분하는 것보다는 훨씬 논리적이고 통계학적인 신뢰도가 높다. mbti는 유사과학이 아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캐서린 브릭스와 딸래미 이사벨 마이어스가 제작. 칼 융의 심리적 유형 이론에 기반한다.
다만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식 mbti 검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mbti 검사를 본뜬 야매 인터넷 검사를 받고 결과를 믿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누군가는 본인의 mbti 정식 검사와 인터넷 검사 결과가 다르다고 말한다. 근데 나는 내 mbti가 정식 검사를 받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아, 방금 또 ISTJ 같았어
mbti에 대해 나름 신랄하게 비판한 지난 글 <MBTI 좋아하세요?>의 마지막에서, 그렇다면 항공교통관제사가 되기에 적합한 mbti는 뭘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에 검색해봤다고 언급했다. 구글에 '관제사 mbti'로 검색하니 관제사는 ISTP 유형에 적합한 직업이라는 글이 많았다. 내 유형인 ISTJ가 관제사 그 자체인 줄 알았는데?! 사실 '이렇게 관제하겠다!'라는 계획(J)을 세워도 단 5초 만에 와장창되는 것(P)이 관제라서, 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 찾아보니 <에니어그램을 이용한 관제사의 성격유형과 직무만족도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찾을 수 있었는데, 워낙 다운로드가 어려워 읽어보지 못했고 게다가 mbti 이야기가 아니라서 패스했다.
아주 찝찝한 검색 결과 때문에 지금까지 관제사와 mbti의 관계를 궁금해한 사람이 없었다고?라는 의문이 생겼다. 아름다운 지식의 보고인 구글에서는 한국어보단 영어가 잘 먹히기 때문에, '***atc mbti'로 재검색해봤다. 무려 15년 전에 미연방항공청(FAA)에서 연구한 논문이 검색되었다. <A Longitudinal Study of Myers-Briggs Personality Types in Air Traffic Controllers> 라니! 제목도 완벽하다. 내 궁금증을 해결해줄 것 같아서 읽어봤다.
***ATC(Air Traffic Controller) : 항공교통관제사
찾다 찾다 못 찾으면 무슨 유형이 관제사에 적합한가를 알기 위해 우리 팀 현장 근무자 약 30여분에게 변태처럼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천천히 전부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다행히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연구를 대신해줬다. 무려 6,420명의 표본을 가지고.(역시 자본이 최고야) 이 숫자는 1982년과 1985년 사이에 미연방항공청의 항공교통관제사 선발과정에 입과한 사람 수로, 남성이 5,588명으로 전체의 약 87퍼센트를 차지했다. 나머지 832명이 여성이다.
여러 가지 지표가 있었지만 내 궁금중을 해결해주는 열쇠는 위의 사진이다. 해석해보자면, 남성 일반인은 ISTJ, ESTJ 비율이 각각 19.4퍼센트와 12.9퍼센트로 높다. 근데 바로 옆의 남성 관제사는 일반인보다 ISTJ와 ESTJ 비율이 훨씬 높아진다. 각각 24.1퍼센트와 21.9퍼센트로 두 유형을 합쳐 거의 전체의 반이다. 여성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재밌는 건 여성 일반인은 ISFJ의 비율이 가장 높았는데 여성 관제사로 돋보기가 옮겨가면 아주 비율이 눈에 뵈지도 않을 만큼 작아진다는 것. 전체적으로 봤을 때, 관제사는 FP보다는 TJ 유형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연구 결과가 전부인 건 아니지만 내 궁금증에 원하는 답은 대략 나왔다. 관제사 중에서는 ISTJ와 ESTJ 유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많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건 이러한 유형을 가지고 있을 때 관제사라는 직업을 갖기가 쉬워진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ISTP가 관제사에 가장 적합한 유형이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글은 틀렸다. 심지어 ISTP의 분포 비율은 관제사 집단에서 더 낮거나 일반인과 같다.
또 하나 주목할 수치는 NTJ형의 약진이다. INTJ 또는 ENTJ 유형은 관제사 집단에서 일반인보다 그 분포 비율이 약 두 배, 많게는 네 배까지 뛰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TJ형 인간이라면, 관제사를 했어도 아주 잘했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근데 F형 인간의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건 좀 슬프다. 뭔가 결과를 알아보고 나니 관제사는 로봇인간집단인 것만 같다. 또는 나는 F이니까 관제사는 안 맞을 거야..라고 지레 겁을 먹는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있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너무 얽매일 필요는 또 없는 게, F형도 비율이 작을 뿐이지 있긴 있다는 거. 그리고 로봇인간집단에서도 감수성 풍부하고 감정이 깊은 F형이 필요하니까.
결론 ;
관제사가 되고 싶은 당신! TJ형이라면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