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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Nov 08. 2023

바람에 휘청이던 날

가을이 겨울에게

모든 것이 휘청거렸던 어제와 오늘.


바람을 피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바람이 배어 나오는 바닷가로 향했어요. 빽빽한 건물과 사이사이를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없는, 거칠 것 없는 바다 위에서 불어오던 거센 바람.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가를 어지럽히는 머리칼을 여러 번 정리하며 걸었어요.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불던지, 모래알들이 솟아올라 볼을 따갑게 만들기도 했죠. 옷깃을 움켜쥐며,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십여 분. 그곳으로 향하며 싱숭생숭했던 마음 같은 건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안온한 공간에 도착해 짐을 풀고,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야외 온수풀에 몸을 담갔어요. 적당히 뜨거운 물속에서 가만히 헤엄치며 허리가 휘어지는 갈대숲을 바라보고 있으니 들던 묘한 기분.





요동치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이토록 평화로와지는 것은 왜일까. 세계는 아까와 지금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 마음은 왜 극과 극인 걸까? 질문이 기분의 끄트머리를 따라왔어요.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노곤해진 몸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답을 찾았죠. 저 멀리 가지각색의 섬들이 펼쳐진 바다 위에서 성난 듯 춤추는 파도와 거의 드러누워버린 갈대숲까지, 점점 더 거세지는 바람이 답이라도 해줄 것처럼.




이중으로 닫아놓은 유리창 앞에 서서 그것을 보고 있으니 모든 것이 고요한 춤사위처럼 느껴질 뿐이었어요. 마치 정해놓은 순서를 따라 흐르듯 움직이는 댄서들처럼, 아름다워 보였죠.



그 순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어요. 창을 열고 나가는 순간, 휘몰아치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 거라는걸. 방금 전까지 누렸던 고요는 한순간도 존재한 적 없다는 듯, 사라져버릴 거란 걸.



어딘가의,

누군가의 삶도,

그런 것 아닐까요?



유리창 너머에서 바라보는 이에게는 잘 그려놓은 풍경화처럼 보이는 삶의 장면들이, 그 안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에게는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것.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우린 이미 겪어봤기에 알고 있죠.




종종, 상상해 보곤 해요.


당신의 지금이, 어떤 계절일지.

보이지 않는 마음 안의 날씨를.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누군가와 닿고 싶어서, 이렇게 매일 쓰고 있나 봐요.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거센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고 말았나요?

흐트러진 머리칼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나요?


가을이 겨울에게. 일상 에세이 편지.

p.s.

어떤 날이어도 좋아요.

계절도, 날씨도, 결국엔 지나갈테니까.

기다리지 않아도, 맑은 날은 오고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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