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봄 Nov 08. 2023

노이즈 캔슬링의 세계

가을이 겨울에게

어제까지 내 삶에 없었던, 어떤 것이 처음 등장하는 결정적 순간.


그것은 낯선 타인일 때도, 한 권의 책일 때도, 누군가의 한마디일 때도 있어요. 살아있는 존재, 하나의 물체, 한 번의 경험 혹은 지식... 우린 무언가를 알고 난 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니까. 그 찰나를 통과하는 순간 반드시 변하고 말죠.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삶은,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려요.


참 신기하죠? 인간은 이토록 세세하고 치밀한 세계의 직조 안에서 삶을 엮어가요. 고대의 신화가 수놓아진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만큼이나, 놀라운 우주의 신비 아닌가요.


그래서 오늘은 어제와 달라져버린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어젯밤, 태어나 처음으로 '헤드폰'을 샀어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것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들도 잡아내는 성능이 뛰어난 귀를 가진 덕분에, 여러 장소에서 가지각색의 소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버텨내고 있었거든요. 굳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으로. 여태껏 없어도 괜찮았는걸, 미련한 고집으로.


하지만 글 작업에 섬세함이 더해질수록, 쓰는 순간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집중을 흐트러트리는 소리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어요. 고작 소음 따위에 흔들리는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다가, 그런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죠.


'백 퍼센트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상황을 확실히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미룰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적당한 비용과 잠깐의 발품이면 오늘 당장 이룰 수 있는 것인데!'





퇴근길. 헤드폰 좀 써봤다, 하는 이와 함께 매장으로 향했어요. 평소 가사가 없는 재즈와 클래식을 주로 듣는 취향과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하다는 정확한 목적에 맞춰서, 예산에 딱 맞는 헤드폰을 추천받아 구매했어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몇만 원 더 저렴했겠지만, 택배를 기다리는 이삼일을 소란에게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시불이요-!'를 외쳤죠.


그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헤드폰을 쓰고, 노이즈 캔슬링 버튼을 누르고, 요즘 최애 곡 autumn leaves를 플레이했어요.


순간, 뜨거운 온탕 안에서 나와 시원한 바깥바람을 맞았을 때의 개운함을 느꼈어요.

버튼 몇 개를 누르자마자 들끓는 소란 안에서 건져 올려진 자신이 어찌나 놀랍던지.


'노이즈 캔슬링'이 없는 세계와의 이별이었죠.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이 더해진.





덕분에 오늘은 북적이는 카페에 앉아 편지를 써요.

어느 때보다 고요하게, 잔잔하게.


당신은, 어떤가요?

어제와 전혀 다른 오늘을 만들어버렸던, 무언가가 당신에게도 있었겠죠?

부디, 당신은 나처럼 미련한 고집을 부리지 않기를 바라요!


어떤 해결책도 백 퍼센트라는 것은 없으니까.

단 1퍼센트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가을이 겨울에게. 일상 에세이 편지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에 휘청이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