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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Nov 13. 2023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가을이 겨울에게

'수능 금지곡'이라는 단어 기억하시나요? 어떤 노래들은 중독성이 강해서, 한번 스치듯 들었을 뿐인데 며칠을 입안에서, 머릿속에서 맴돌잖아요. 하나의 멜로디나 한 줄의 가사를 계속 되뇌게 되는 일. 누구나 겪어본 일이죠. 그래서 수능시험이라는 십 대 시절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절대 들어선 안되는 노래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



아침. 유튜브 메인화면 첫 번째에 떠있는 영상 하나를 클릭했어요.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될 줄 모르고. 우연히 클릭한 20분짜리 영상을, 가족들과 외식을 하며, 혼자 방에 앉아서, 매트 위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생각하고 말았어요.



가끔 알고리즘이 주변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해본 적 없나요? 꼭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영상을 보는 동안, 요즘 화두로 지니고 다니던 생각들에 대한 답이 되어주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보고, 다시 보고. 한 번 더 보다가 그만 이렇게 편지에도 쓰고 있어요.





'라틴어 수업'으로 유명한 한동일 작가님의 새로 출간한 책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영상은 진행자의 질문에 어울리는 책 속의 라틴어 문장들을 소개하며, 작가님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진행되었죠. 말하자면 그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어요.



맞아요. 이만큼 살아오며 내내 묻고 또 물어왔으면서, 여전히 가장 많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여러 문장들 중 가장 깊이 와닿은 것을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요. '아픔이 스토리가 되게'라는 짧은 문장 하나가,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거든요. 마치 지독한 '수능 금지곡'처럼.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작가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시더군요. 자세한 사정은 전부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평등하게 만들어준다고.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사는 내내, 지나온 어느 순간의 아픔만을 이야기하며 생을 낭비해서는 안 될 테니까. 지난 세월의 아픔이 통용되는 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앞으로의 모든 삶의 선택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마음먹는다면, 이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고.


그러니 '아프다'라고 끝없이 말하는 것을 멈추고, 누군가 당신의 아픔을 듣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위로를 넘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다르게 살아가면 어떻겠느냐고. 그 순간, 아픔은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스토리'가 될 수 있다고 말이죠.





맞아요. 우린 모두 각자의 슬픔, 행복, 아픔, 절망, 좌절, 희망, 불안, 기대... 삶이란 한 단어안에 포함된 것들을 지니고 살아가죠. 사람이 평등하다는 문장을, 그렇게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누구도 행복만을 가질 수 없고, 불행만으로 채워지지 않죠. 계절이 오고 가듯, 아침과 밤이 교차하듯, 생이 시작에서 끝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을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



영원히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노라 마음먹은 후로 가장 좋은 것 하나는, '무엇이든 쓸 수 있다'라는 깨달음이었어요. '삶을 전부 씁니다'라는 문장을 프로필에 적어둔 것도 그래서죠.



좋은 일, 나쁜 일, 원했던 것, 원치 않았던 것, 예상대로 흘러가는 어떤 일, 흐트러진 계획...'사람은 평등하다'와 같이 전부 '글로 쓰일 순간'이라는 속성은 동일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후로는, 아픈 일, 속상한 일, 괴롭고 힘든 일도 부정하지만은 않을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싫지만, '삶의 속성이란 그런 것'이라고 조금은 쿨한척할 수 있게 된 거죠.



'언젠가는 이것도 지나갈 거야'라고, 이 모든 것을 통과한 후에,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거라'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위로해요.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에게도 분명, 당신만의 아픔이 있을 거예요.

당신의 아픔은 스토리가 되어가고 있나요? 부디, 언젠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요.


가을이 겨울에게. 일상 에세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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