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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Nov 15. 2023

너무 많이 필요 없어요

가을이 겨울에게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게 되나요?


어두워진 퇴근길. 습관처럼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려 '호-'하고 내뱉은 숨이, 짙은 밤하늘 아래 새하얗게 번질 때. 그때 생각해요. '아아, 진짜 겨울이구나'





계절의 목차가 바뀌는 페이지마다, 옷장과 신발장 정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이제 겨울이 도착했으니 채비를 해야죠. 도톰한 니트들을 꺼내고, 패딩을 걸어두고, 발목을 감싸는 부츠를 눈높이에 맞는 칸으로 자리를 옮겨요. 가끔은 귀찮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 번씩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살피고, 재정비하면서 '이번 계절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꽤 유용한 루틴이에요.


색색의 실로 짜인 포근한 니트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게 해주는 아이템이지만, 관리하기 쉽지 않은 옷이기도 하죠. 아무리 아끼며 입어도, 어느 순간 몽글몽글 보풀이 생기기 시작해요. 면으로 만들어진 옷처럼 자주 세탁하기도 어려워서 냄새가 묻어버리면 곤란해지기도 하고요.


매번 세탁소에 맡기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고, 대충 입고 다니기엔 예쁜 니트가 볼품없어 보일 테니 용납할 수 없어요. 그래서 니트를 꺼내야 하는 계절이 오면, 마음을 다잡고 하루를 고르죠. 오늘은 '니트 정리하는 날이야'이렇게.






가지고 있는 니트를 전부 꺼내어 바닥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보풀 정리 기계와 섬유탈취제를 준비해요. 차례차례 보풀을 정리하고 탈취제를 뿌려서 주름을 털어내죠. 아이보리 터틀넥, 블랙 브이넥, 라임색 카디건, 그레이 원피스... 하나하나 꼼꼼히 보풀을 제거하자니 꽤나 시간이 걸리네요. 슬슬 어깨도 아픈 것 같고, 몽글몽글 보풀 먼지들이 쌓이니 재채기가 자꾸 나와요.


절반쯤 했을까, '왜 이렇게 많은 거야?'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죠.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 '이거 다 입기는 하는 건가?'로 생각이 바뀌어요. 결국, '잘 입는 것들만 남기고 줄여보자'로 결론이 나죠.



충분히 입을 만큼 입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구분하는 작업도 쉽진 않아요. 영롱한 푸른색 캐시미어 니트는 정말 좋아하는 옷이라 자주 입었죠. 이젠 보내줘도 될 것 같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자꾸 망설이게 해요. 집에서 입을까? 근처를 산책할 때 딱이지 않을까? 핑계가 확실한 생각들에 애써 고개를 돌리고, '정리할 옷' 바구니에 집어넣어요.


그렇게 남길 것을 남기고,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나니 옷장이 한결 시원해졌어요. 물론 여전히 충분한 개수의 니트가 차곡차곡 입혀질 날을 기다리며 쌓여있고요.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관리하는 것에도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을, 이렇게 계절의 사이마다 확인해요. 한 사람의 일상에 필요한 물건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요.


옷, 신발, 책, 가방, 가구, 그릇... 그것이 무엇이든, '적당히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계절이 바뀌는 지점을 알람으로 삼아, 스스로를 정돈하는 순간. 덜어낸 것은 물건이지만 가벼워지는 것은 마음이에요.






당신은 어떤가요?


너무 많아서 버거운 것이 있다면, 조금 덜어내 보면 어때요?

겨울을 핑계 삼아서요.


가을이 겨울에게. 일상 에세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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