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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감자 Aug 30. 2015

그래, 오늘은 회복하고 5코스

걸으며 위로받은 날 보낸편지 _다섯번째

여행지 이기에 가능한 것 같애


몸의 컨디션은 나아진 것 같았지만, 짐을 꾸리면서 집에 그냥 갈까 하는 생각과 이대로 가면 아무것도 아닌 여행이 될 것 같은 두려움에 하루만 더 버텨 보자 생각하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고 숙소도 바꾸기 위해 짐을 꾸렸어.

우선 배낭의 무서운 맛을 알고 난 후 필요하지 않다기 보다는 분리를 하자라는 꾀가 생기더라고

다행히 손으로 운반이 가능하게끔 지퍼백이 있어서,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비옷과 책 여분의 옷을 한 곳에

몰아넣고, 짐을 꾸렸어.

한결 배낭이 가볍웠고 양손도 무게 균형이 맞았어.


어제 잘못 걸었던 2코스의 도착점 근처에 있던 버스정류장이 다음 코스로 가기 위한 버스 정류장이었더라고..

인연이 깊은 정류이네 싶었어.

5코스 시작점에 가끼 위치했다는 이유 하나로 팔도민박을 예약했어.

3일을 묵은 온평리에 위치한 소라성 민박과 남원리에 위치한 팔도민박의 방상태는 그렇게 차이가 안 났는데

요금 5000원 더 비쌌어. 하지만,

팔도민박에 들어서는데 왠지 사람대접을 받는다고 해야 할까? 앞에 머물던 숙소에서는

손님 대접이란 게 없었는데.. 사람 냄새가 나서 좋았어

문에 들어서자마자 아저씨는 아침 먹었어 였어. 그냥 고마웠지.. 그 인사 말이.

그담에 할머니도 마친가지로 아침 먹었어 였어..

방에 아직 손님이 안 나가서 청소하고 가방 들여놓겠다고  미안해하시면서 말씀하시는데,

난 무조건 OK 였거든..

든든하게 차려온 아침상을 얼마만에 받아보는 건지.. 감격이었지..

아침상엔 숙박하고 계신 올레꾼 아주머니와 겹상을 했어.

같은 밥상을 받은 아주머니는 50대 주부이신데 남편 출장을 가면 이렇게 혼자 여행을 하신데.

몸이 건강할 때 움직인다고 하시면서..

할머니표 밥상은 내손과, 내입과, 내속이 모두 편하게 움직여 줬어.

많다 싶은 밥을 다 먹을 수밖에 없기도 했고..

내가 음식을 씹고 있는 동안 아주머니는 자신의 삶을 아주 살짝 내비치면서

나의 가족관계를 내 삶을 살짝  궁금해하시더라고

다른데서 였다면..아마 난 짜증이 났을 거야.. 제주도이기에 가능했지 싶어..

오늘 처음 본 분께 난 엄마 얘기를 했어.. 놀라웠어 내가..

엄마와 함께 여행하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쉽다고.. 나의 속내를 얘기했거든.

이게 여행지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 싶어

그렇게 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약도 잊지 않고 먹어주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마음에 담고 가볍게  5코스를

시작할 수 있었어.



옆에 바다가 여지없이 출렁이고  있었어. 원 없이 바다는 보고 갈 것 같애

처음의 산책로를 지났을 때쯤 정자 하나가 보였어. 우선 드러누웠어.

몸을 좀 편하게 해주려고, 밖에서 하늘 보며 , 바다 보며, 구름 보며, 누워있다는 것은 여행자만의 특권이 자유를 누리는 것 같아


그렇게 잠시 후 아줌마 올레꾼일행들이 몰려와 내 옆에 떠들썩하게 드러눕더라고

거슬렸지. 아줌마들의 수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어. 수다를 뒤로 하고, 서서히 땀이 나기 시작하더라고.

수건. 늘 땀 옆에 있던 수건을 찾았어. 없더라고 그 자리에 뒤돌아 가봤지만, 없었어..

 아~ 마냥 좋을 수만은 없구나 하는 사건이 또 일어난 거지.

그렇게 몇 분을 갔을까? 요란한 걸음걸이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어

너무나 밝게 유쾌하게 내게 인사를 건네는 거야

양손에는 지지대를 들고, 모자를 쓰고, 안경을 쓴, 귀여운 올레꾼 아주머니.

한 40대 초반 정도 인 것 같아.

처음 보는 내게 너무나 친근하게 얼굴이  군데군데 타서 큰 일이라며 웃으면서 얘기를 하더라고. 그때는 몰랐지 이분 덕분에 유쾌한 5코스가 될지는..

그렇게 인사하고 지나칠 줄 알았는데. 한마디가 두 마디 되고, 세 마디가 되고,

이제는 아예 얘기를 주고받으며, 걷게 되었어. 여행이란 게 참 신기해..

낯선 이가 친근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나 봐.

8일째 라고해 15일 휴가 받고 왔다고, 어렵게 받은 만큼 걸을 수 있는 한 걸어야 한다고..

뒤코스부터 돌았다고 하시면서, 인제 앞 코스를 돌 거라고.. 많이 다부져 보였어

본인이 돌아봤던 코스며, 거기서 만난 사람들 얘기면, 먹었던 거며, 쉼 없이 얘기를 하는데

나도 그 코스를 돌고 있는 듯했어.

뒤코스부터 돌아보라고, 좋은 숙소 있다고 강력하게 추천을 하시더라고

그 통에 나도 그분의 조언을 참작해야겠다 내심 생각을 하게 됐어.

근데 많이 고마웠던 건 먼저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내 보조를 맞쳐주는 거였어.

많이 쉬자고 하고,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속이 그땐 좀 다시 안 좋았거든.

혼자였으면, 이번 코스도 유쾌하지 않았을 것 같아.  그분 덕분에 얘기하면서 쉬면서,

다른 올레꾼들과 인사하면서 그렇게 즐기며 걷다 보니 속도 좋아지더라고

처음으로 즐기며 걸었던 것 같아.   5코스는 쉴만한 곳이 무지 많았는데, 쉬는데가 나오면

거의 다 쉰 것 같아.

최고는 넙빌레 지나서 공천포 동네의 올레꾼 휴게소가 최고였던 것 같아

올레꾼을 위한 얼음 나오는 정수기와, 커피자판기, 발마사지, 그러한 모든 게 방안에 꾸며놓고 있더라고.

회관처럼. 여기서 난 편하게 또 불편한 속을 다 비울 수 있었어. 그 뒤로  편안해지더라고


그 뒤에 걸은 숲길은 정말 동화책 속에서나 봤던 작은 숲길 같았어

아름다운 무언가로 빛나는  듯했어. 그분이 이때쯤 내 안색이 좋아졌다고 그러더라고..

무지 신경을 써줬다는 거잖아 그 얼굴을 읽었다는 게.. 처음 본 사람인데.. 많이 고마웠어.



그렇게 유쾌하게 5코스 끝을 향해 걸었어. 5코스는 풍성하고 유쾌한 길로 기억될 것 같아

쇠소깍이란 곳에 도착해서 길치의 진면목을 봤지

나도 그렇지만, 그분도 한 길치라는 거야. 두 길치가 거의 다 와서 헤맨 거야

파란 표시만 보고 또 걸었지.. 왠지 6코스 시작을 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단지 코스 표지판을 못 봤다는 이유로 계속 걸었어

역시 느낌이 맞았어. 뒤에서 걸어오는 다른 올레꾼에게 물어보니 지났다고 하는 거야

이런~ 역시 느낌도 한목 해.  많이 걸어본 그분의 노하우로 버스정류장을 물어보고, 조금 더 걷기로 했어.

6코스 시작을 본의 아니게 은근슬쩍 한샘이야. 길이 고즈넉하면서 좋더라고. 그렇게 뜻밖의 6코스를 맞이 하면서도 기분이 좋았어. 보목항구 걸어나오니, 버스정류장이 있더라고. 그렇게 버스에 오르고, 친절한 기사 아저씨 덕분에 잘 내리고 갈아 탈 수 있었고, 아마 그분도 아저씨의 도움으로 잘 내렸을 거야.

길치라는데.. 이 정도는 그래도 가겠지 하면 안심을 했어..  

여행길에서 만났으니 여행길 위에서 헤어지는 게 당연한 거겠지 싶었어.

많은 생각을 하지는 못했지만, 즐겁게 즐기며 걸었다는 게 무엇보다 감사하고 큰 것 같아

즐긴다는 거.. 시간, 시간을 참 윤택하게 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의 길은 목표로 무겁게 걷는 길이였다면, 오늘의 길은 그 길을 즐기며 느끼는  길이였어.

나에게 즐기는 게 뭔지를 알려준 것 같아.

내일은 그분이 일러준 12,13코스를 돌려고 생태학교에 문의해놨어

남은 길도, 즐기면서.. 내가 처음 이 길을 선택했던 각오, 다짐 등 이러한 질문들과

만날 수 있음 좋겠다 해..

비록 못 만나다 하더라도, 길 자체를 즐기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


9월25일 H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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