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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감자 Aug 30. 2015

그래, 오늘은 3코스 걷는중

걸으며 위로받은 날 보낸편지 _네번째

오늘 걷는건 욕심이였다고...


어제보다 나은 아침을 맞이했어 

푹잤거든. 설사 없이 

어쩌면 이러고 있는 게 돈이, 시간이 아까워서 더 움직이려고 했던 것 같애 

카메라 가방 하나 둘러 메는데도 기운이 빠지는 거 보면 오늘도 그닥 좋은 몸상태는   

아니듯 예감은 했던 것 같아 

예정대로라면 2코스를 가야 하지만, 어제 쉰 관계로 2코스는 건너뛰고, 3코스로 정한 뒤 

기운을 차리기 위해 뭐라도 먹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제 알아둔 가게에 가서 우선 속에 무리가 

없는 걸로 골랐어 


하나씩 먹어가면서 기운 차리자 되뇌었지만,5분 걸었을까 다리는 벌써 힘들다고 찔통을 부리는  듯했어.

마을 올레길로 시작하는 곳이라서 쉴만한 곳이 딱히 보이지 않았어, 앉으려고 만든 나무인지는 몰라도 매우 

낮은 나무의자에 어째 거나 몸을 맡겼어

생각대로 몸은 움직여 주지 않더라고.. 그래도 영양분이 들어가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로 계속 걸었어. 

1코스를 걸을 때 보다 더욱 나의 몸에 신경을 쓰면서 말야. 왜 꼭 이상이 있을 때 더 주의를 하고 신경을 더 쓰게 되는 걸까 몰라 

웃기건 사물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 한 20분 걸었을까 몇 시간을 걸은 느낌과 무게감으로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다리를, 몸을 쉬어 줬어. 근데 길이 좀 이상했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 학생에게 물어보니 맞다는 거야. 

초등학교를 옆길로 올라가라고.. 이 말을 들었어야 했어.. 나의 이 길치는 어리바리는 오늘도 이렇게 힘든 몸인데.. 길을 잘못 온 거였어. 



올레길 표시대로 난 이상하다 하면서 같지. 초등학교는 오른쪽 , 올레길 표시는 왼쪽, 

여기서 난 올레길 표시를 100% 믿고 걸었지. 점점 길의 윤곽이 보일수록 많이 익숙한 바다가 보이는 거야.. 

정면에 2코스 종점 / 3코스 시작이라는 표지판이 보이더군. 

헛웃음만 나왔지.. 이렇게 건너뛴 2코스를 뒷부분만 본의 아니게 맛을 본 다음 3코스를 다시 시작해야 했어

몸은 더 쳐지고, 1시간 넘게 걸은 느낌이었어. 그냥 숙소로 들어갈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몸은 가고 있더라구.. 

왔던 길을 다시 걷는데.. 아 ~기분을 알까? 몸이라도 괜찮으면 웃으며 걸을 수 있겠지만, 

그때 알았어야 했을까? 오늘 걷는 건 욕심이었다고.. 

걷는 내내 속이 불편하고 기운은 밑바닥이었고, 그나마 다행인건 설사를 안 했다는 거.. 

그 외에는 몸이 너무 힘들었어.. 


사람이 속이 편해야 오래 산다는 말이 딱인 것 같아. 진짜 죽을맛이였어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속은 완전히 뒤집혔지. 속에 있는 것을 다 솎아 냈어. 그러고 가다 보면 또 울렁거리고, 그렇게 내 구토 잔여물이 3코스에 뿌려졌어 


3코스가 의외로 호락 호락한 길이 아니더군. 오름이 내 느낌은 3개 정도 였던것같애 

눈은 아름다웠어.. 제주의 오름은 큰 산의 정상에서 맛보는 희열정도는 아니겠지만. 큰 나무의 그늘 밑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듯한 느낌인 것 같아. 

잠시 제주 오름의 바람으로 속을 달랜 후 다시 속을 솎아냈어 

이대로 3코스 완주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어.. 더 욕심내지 말자 하고 나를 타이르기 시작했지..

완주가 목표가 아님을 다시 새기면서.. 

3코스를 걸었던 가장 큰 이유는 김영갑 갤러리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거기 까지는 가자는 바람으로 속을 다시 달랜 후 걷기 시작했어.. 

쉬엄쉬엄 힘들게 한 발짝 내딛으면서 시원한 물, 누울 수 있는 의자, 화장실을 바라면서 얼마를 걸었을까.. 

작은 모퉁이를 돌아 나오자 작은 버스길이 보이고, 버스정류장이 보였어..

버스정류장보다 거기에 설치되어 있는 의자가 눈에 들어왔어 

스르륵 누워서 속을 달랜후에 들어온 풍경, 건너편 정류장에 모녀인듯한 모습을 하고 앉아있었고, 

보건소 간판이 눈에 들어왔어. 

아! 살았다 였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일어나서 보건소로 향했어 

보건소를 지키고 있는 선생님은 친절하게 맞아주고, 상태를 점검해 주셨어. 

차근 차근 얘기도 하고, 손도 따주고, 약도 지어주고, 그렇게 고마운 손길을 받고 나왔어.

그리고, 반가운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어..  


보건소 근처 김영갑 갤러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힘이 절로 나는 것 같았어 

김영갑 갤러리 간판이 보이고,  손수 만들었다는 마당의 모습은 아픔몸을 이끌고 했다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가꾸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어.. 제주의 돌들로 만들어진 문화공간 같았어.. 

우선 갤러리 뒤뜰에 있는 작은 찻집에서 물로 목을 축이고, 잠시 휴식을 취했어 

다른 관광객도 찻집의 여유를 즐기고 있더라고.. 주스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면서.. 

감귤주스를 마시면 속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비싸지만 나에게 

상을 주는 의미로다가 마셔줬어..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어.. 어디서 맛볼 수 없는 맛 일 거야.. 지금도 생각나네.. 

맛은 맛이고.. 속은 바로 신호를 보내더군.. 그간 걸어오면서 속은 그래도 참아주었나 봐 

화장실이 있는 곳에서 설사의 신호를 보냈으니.. 고마울 뿐이었지.. 

정말 주스만큼 시원하게 쏟아낸 것 같아.. 

내 안의 장에 있던 노폐물이 다 쏟아져 나온 기분이었어. 그러고 나니, 한결 속도 편하고, 기운도 나더라고. 

한결 좋은 컨디션으로 김영갑선생님의 사진을 아닌 삶을 엿보았다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한 장의 사진에 삶이 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어.. 

단지, 제주의 바람을, 공기를 담고 있는 풍광들이었지만, 내겐 삶으로 비쳐질 만큼 

굉장한 깊은 무게감으로 나를 짓눌리듯했어.. 

알지 못하면 담지 못하는 풍광들이 내 눈 앞에 있었어... 

사물에 욕심이 나서 셔터를 눌러 대는 내가 아니, 그런 나의 사진에 부끄러움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걸 거야.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김영갑 선생님의 삶은 전시를 본 뒤 도록을 통해서 대략 접하게 됐어.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를 담기 위해서 홀로 머물면서 제주도 이어도를 담아내신 분이란 걸.. 

어디 하나에 미칠 수 있다는 건 어쩜 큰 복을 받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감내해야 하는 포기해야 하는 삶의 무게도 크기 때문에..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겠지.. 

여기서 머물며 담아낸 인생은 후회하지 않겠지.. 작품이 말을 해주고 있으니깐.. 

속을 솎아내며 걸어오길 잘했다 싶었어.. 

삶을 솎아내고 싶을 만큼 힘들 때, 여기를 다시 찾으면... 내 안의 장에 있던 노폐물을 

다 쏟아내듯 그렇게 버리고 다시 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에 담긴 삶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너무나 큰 선물을 받은 느낌으로 

갤러리를 나왔어.. 

건강할 때, 건강하기에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거 이현실에서 자유롭게 꿈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 참 행복한 존재다 싶었어. 

숙소에 가기 위해 도로를 나왔을 때 차한대가 옆에 스더니 익숙한 얼굴이 '타세요‘하는 거였어..

따뜻한 손길을 받은 보건소 선생님.. 

숙소에 가는 버스정류장 앞까지 데려다 주시겠다고.. 너무나 감사했지..

 3코스는 이래서 잊지 못할 것 같아.. 

계속 나쁘기만 하는 것도, 계속 좋기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나쁜 가운데 좋은 게 일어나고, 좋은 가운데 나쁜 게 일어나고 늘 함께 공존하는 것 같아. 

여행을 하면서 세상의 양면성을 몸으로 느끼는 횟수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이러다 

도인이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다행히 보건소 약이 좋은 건지 속도 편하고, 기력도 좋아지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내일을 위해 아래 식당에서 보말죽을 먹었어.. 잘 넘어간다 싶더니. 

아직은 무리였나 봐. 어느 선에서 속이 콱 막히는 느낌이 들더니 맛있게 먹던 손과 입은 멈출 수밖에 없었어.. 

숙소에 올라와 한숨 자려고, 누웠어.. 


9월 24일 H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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