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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감자 Aug 30. 2015

그래, 결국 오늘은 탈이 났어

  걸으며 위로받은 날 보낸편지 _세번째 

길위에서 아플때는 길위에서 쉬면돼

탈이 제대로 난것 같은  오늘이야.

쑤시던 어깨, 발은 마구 뿌려된 파스 덕분인지 움직임이 한결 부드러웠어. 

문제는 설사가 멈추질 않는 거야 

조금씩 자주 설사가 터지는 탓에 고민할 것도 없이 숙소에 머물러야 했어 

살짝 한심함이 몰려왔어 


그러다 바다를 봤는데. 이런 여유를 언제 누려보겠나 싶었어 누워서 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거 그걸로 위안을 삼았지.




그러다가 잠든 것 같아 눈을 떠보니 밖은 비가 내리고 있더라고 

비 오는 나를 위해 준비를 다해서 왔는데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비를 잘도 피했지.. 

설사 때문에 잠이 깬듯해. 다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기력이 없어서 또 누워있고 이러다 이번 여행의 의미가 무색해질까 봐 살짝 걱정도 됐어.

아래층의 식당에서 본 보말이 죽이 생각이 나더라고.

용기를 내어 아래층 식당으로 갔지. 식당에 앉아있는데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보말이 죽은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전복죽을 시켰어.. 

맛은 그냥  그랬어.. 제주도의 진짜 맛을  못 본 거겠지.. 바로 소식이 오더라고 몇 스푼 떴을 때. 

설사한 후 돌아와서 먹으러 하니 안 넘어 가더라고.. 배도 살살 불편해지면서 열도 나고 

흠. 어쩌겠어 아깝지만 남기고 일어섰어 

더 이상 이러고 있음 안될 것 같아서 약국을 물어봤지. 차로 고성리라는 곳에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비상약 정도는 가게에 판다는 정보를 듣고, 

맥 빠진 몸을 끌고 느릿느릿 걸어갔지. 가게 근처에 올 때쯤 택시 한대가 스쳐 지나가더라고... 

누군가가  콜을 불러서 가는 택시인가 하고 있는데.. 얼마 후 그 택시가 다시 오더라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고성리 사거리쯤 일까 작은 약국 간판이 보이는데 무지 반가웠어. 아! 살았구나 했지. 약 먹으면서 한번 구토하고 설사는 그 이후에 안 한 것 같애. 

내일은 다시 올레길 위에 설 수 있겠지? 하루가 참 무료하게 흘렀어.. 

적막함이 싫어서 TV는 틀었다 껐다 반복 

바다를 보면서 문득, 난 이 길을 왜 걸으려고 왔을까는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더라고 

일상, 현재는 없어진 일상, 아니 아직 찾지 못한 그 일상을 만들기 위해, 정하기 위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조금은 우스웠어 

힘들어했던 일상이 지금은 없어서 고민을 한다는 게. 

일상이 곧 삶이라는 거.. 


무뎌지는 일상으로 인해 잠시 일상이 버거운걸 거야. 

내가 찾아야 하는 일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날이 많이 어둑해졌어. 밤에 파도소리는 바람소리 같애. 여기 와서 안 것 같아. 오늘은 무사히 잘 수 있겠지 

내일은 걸을 수 있겠지 기대하며 잠이 들었어.. 


9월23일 H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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