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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감자 Dec 07. 2016

두 번째 여행.
낯선 일상 _ 홍콩 10일 하루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끝은 뭐가 있는지 알아?

Mid Level Escalator' Hong Kong.  Dec.2009


2009.12.7. The Pea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거닐면서.

                                     

오늘은 다시 제자리.. 여행자의 자리에 섰어

익숙한 780번 버스를 타고 밤새 화려했을 불빛들을 뒤로 감추고 뿌연 아침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홍콩의 빌딩들을 바라보는 것도 익숙한 느낌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듯해.

Ferry 선착장 앞에서 15번 버스를 탄다고 가이드는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 시간대별로 정차에 대한 차이를 얘기를 해놓지 않았어..

오전의 Peak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올라가 보려고 나선길이야.


한대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버스정류장에 뭐라고 쓰여있는 게 보이더라고..

10시 이후부터 정차한다고 쓰여있었어. 이 부분도 가이드 책에는 없는 내용이야.

가이드 책이 말 그대로 가이드일 뿐 현지 사정을 다 담는 것은 힘든 것인가 봐.


다행히 센트럴은 익숙한 상태여서,  익스체인지 스퀘어 쪽으로 가보았는데

거기에  버스 표지판이 보이고.. 관광객들도 줄을 서있었어.. 왜  선착장 앞에 사람들이 없었는지

처음부터 의구심을 가져었어야 했는데... 뭔가의 긴장감을 풀고 있었나 봐...


버스에 오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당연히 우산은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들었지만, 너무 일찍부터 나선 탓에 잠이 쏟아졌어..

낯선 길을 가면서.. 난 무슨 배짱으로 잠을 잔 걸까?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니깐..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있었고.. 산 정상 같은 게

보이더라고.. 나두그냥 따라서 내렸지..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나 봐.. 다행히 버스정류장이 피크 갤러리와 연결되어 있어서

비는 피할 수 있었어.. 

                                                                                                                                                             

피크 갤러가 안에 들어서니깐 , 맥도널드 간판이 보이면서 그때부터 배가 고프기 시작하더라고.

평상시에는  먹지 않던 버거를 시키고, 창가에 앉아 오후에 할 것도 없었기에..

비가 그치기를 느긋이 기다리면서.. 

피크에서의 아침을 버거와 맞이한 샘이야.. 

피크의 아침 풍경을 어떨까 해서 나선길이니깐... 제대로였던 것 같아.

가만 들여다보니깐.. 이렇게 느긋한 여행자의 권리를 그동안 누리지 못하고 있었더라고... 

목적지를 정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내일은 무엇을 할까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여행지에서도 일상과 똑같이 계획, 목적지. 일정에  맞추어 지낸 내가 보였어.

조금 여유를 가지고.  느릿하게 즐기자를 생각하게 했어.        

불쑥 내려온 비가 단비가 된듯해.. 


이 여행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얻을까.. 무엇을 버려야 할까.. 

앞으로의 나의 선택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어떤 열정을 품어야 할까.. 

그런 생각이 조금 더 강하게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

여행자의 생활은 많이 단순해 지기에.. 생각도 지금처럼 못했던 것 같애..

생각도 단순해지니깐.. 필요한 것도 단순해지고..


하지만, 단순해진 생활처럼 

단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여행자의 특권을 최대한 누려야겠다 싶었어..

여행자의 생활도 조금 여유를 가지고.  느릿하게 즐기자 라는 생각도 들고.

단순해지기.. 



하늘은 흐릿했지만,  비에 젖은 홍콩 섬의 빌딩들이 눈에 더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 같았어.  

피크의 아침은 편안함을 담고 있었어.  근접하기 힘들어 보였던 홍콩 섬의 화려함이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어, 편안함을 준 것 같아.

                                                          

비가 다시 시작될 때쯤..  피크에서 내려와 

꼭꼭 숨겨두었던 뭔가를 꺼내는 기분으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로 향했어

Mid Level Escalator' Hong Kong.  Aug.2011

에스컬레이터는 현지인들의 삶의 공간이기에  올라가면서 내려다 보이는 

빌딩 사이의 골목, 골목 늘어서 있는 센트럴의  생활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좋았어.



생활공간 자체가 유명한 관광지 이기에

집으로 향하는 바쁜 걸음과  축 쳐진 누군가의 뒷모습, 나와 같은 여행자들, 모두 한 곳에 섞여서 앞을 바라봐

여행자들에게서 나오는 들뜸의 기운과 현실의 무거운 기운 감도는 저녁 무렵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묘한 기류가 있는듯해.





조금씩 어둑해지면서, 집에서 풍기는 아늑한  불빛이 서서히 물들이기 시작하는 이 공간에서

집이라는 공간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애.

떠나 있기에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건지  이곳의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일상이 숨쉬었던 공간이 아주 조금은 그리웠어.




이곳에 뿜어져 나오는 묘한 기류에  흠뻑 취해서인지 벗어나고 싶지가 않았어.

길이 계속 내 눈 앞에 보이기도 했고, 길의 끝은 어떤 모습일지가 더  궁금해졌어. 

끝까지 한번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길의 끝은 뭐가 있을까?  기대감이 들기까지 했어.



어떤 큰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닌데... 다시 시작되는 길에 약간의 실망감이 감돌았어.

길의 끝은 역시 또 다른 길이야.  이런 생각이 드는 내가 웃겨서 혼자 피식 웃으며  크게 심호흡 한번 쉬고

나의 길로 방향을 틀었어. 780번 버스를 타러


뭔가 막막하고 길이 없다 느낄 때  이곳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와야겠어.

'길의 끝은 또 다른 길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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